에쓰오일 폭발사고 ‘면죄부’ 준 검찰, 노동부 판단과 180도 달랐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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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표이사·최고안전책임자 무혐의 처분
본부장 등 다른 13명만 산업안전위반 등 기소
노동부는 앞서 대표 등 2명 죄 있다며 검찰 송치
일선 현장 “전형적 꼬리 자르기식 기소” 비판 고조



울산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에쓰오일 온산공장 폭발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부산일보DB 울산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에쓰오일 온산공장 폭발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5월 1명이 숨지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에쓰오일 폭발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은 회사 대표이사(CEO)와 최고안전책임자(CSO)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이 2명의 경영책임자에게 죄가 있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기관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나, 노동부 의견이 검찰에서 뒤집힌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13일 <부산일보> 취재 결과 부산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는 지난 2~3월께 에쓰오일 후세인 알 카타니 전 대표와 이민호 최고안전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에쓰오일은 속지주의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1호 외국계 기업으로 그 결과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돼 왔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울산지검 형사5부는 6개월 정도 흐른 지난 11일 이들 2명의 경영책임자에게 모두 ‘혐의없음’ 처분하고, 회사 정유생산본부장을 포함한 13명(법인 포함)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경영진만 수사기관 판단이 180도 갈린 것이다. 부산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기 곤란하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입증에 최선을 다했다”고만 밝혔다.

검찰이 밝힌 불기소 이유를 보면, 먼저 알 카타니 전 대표의 경우 “에쓰오일 대주주인 외국기업이 선임한 외국인으로 안전 보건에 관한 사항을 최고안전책임자에게 전부 위임하고 실질적, 최종적 경영권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가 대주주다.

최고안전책임자 역시 ‘위험성 평가 절차나 매뉴얼 마련 등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모두 이행’하는 등 법을 어긴 게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공장 내 여러 부서와 하청업체 가운데 한 곳이라도 매뉴얼에 따라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안전 점검을 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사의 안전 시스템이 총체적 부실투성이고 이는 경영진의 문제인데도 사업주와 안전책임자만 형사적 책임을 모면한 것이다. 검찰이 모든 사고 책임을 일선 현장에만 전가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기소’로 기업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에쓰오일 사건은 울산지검이 처리한 다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대비된다.

울산지검 형사5부는 지난 5월 플라스틱 성형 용기 제조업체인 신성산업 대표이사 A 씨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중견기업에서는 지난해 5월 26일 30대 노동자가 작업 중 금형기에 끼여 숨졌다.

검찰은 당시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안전책임자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먼저 기소했고, 대표이사 A 씨에게는 안전책임자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책임을 물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했다.

이는 안전책임자가 결코 회사 대표이사나 대주주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인명피해가 심각하고 파급 효과가 큰 에쓰오일 사건과 판이한 결과다. 지역 제조업체 사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형로펌을 등에 업은 대기업만 비껴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검찰이 아람코가 울산에 투자하는 9조 원대 샤힌 프로젝트를 의식해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노동계는 반발 조짐을 보인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은 “검찰의 고무줄 잣대와 미온적 대처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는 지난 3월에도 지하 매설 탱크에서 폭발이 나 2명의 노동자가 중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고, 지난 6월에는 협력사 직원이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등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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