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감] “사람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울릴 수 있는 악기인 것 같아요”
손한별 대금 연주자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최연소 수석
대금 정악 음반화 작업에도 열성적
최근에는 공연 음악감독으로 활동도
코로나가 한창일 때다. 부산시립예술단에서도 시민 관객과 소통을 위해 ‘문화나눔’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 카테고리에만 모두 105개의 영상이 올라왔는데 특정 영상 하나의 조회 수가 다른 것보다 월등하게 나오자, 담당자가 ‘이게 뭐지?’ 싶었단다. 그 영상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손한별(37·대금) 수석이 연주한 ‘소나무’라는 대금 독주곡(반주는 신디)이다. 영상 녹화 당시엔 평단원이었다. 어떤 남다른 매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궁금했다.
“어쨌든 관을 통해서 울리는 호흡, 호흡을 통해 빠져나가는 음색이 중요합니다. 대금의 특색이 있다면 천공입니다. 갈대 속의 얇은 막을 채취해 말린 ‘청’을 천공에 붙이는데, 대금의 음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목소리 외에 가장 직접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울릴 수 있는 악기가 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떤 대금 연주자가 유튜브에 자신이 직접 연주한 대금 독주 영상을 올리려고 했더니, 유튜브 측에서 특정 구간 선율이 겹쳐서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으니 출처를 밝힌 뒤 올리든지 해당 구간 음 소거가 된다고 알려왔다는 거다. 전통음악은 창작자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오래된 경우가 많아서 저작권 적용을 받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란다. 전후 사정을 알아봤더니 손 수석이 연주한 영상이 이미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서 그 자체로 우선권을 가지게 됐다는 거다. 대금 정악 독주곡 대부분의 음반 작업을 마친 그로선 또 다른 지적소유권을 가지게 된 셈이다.
“조회수가 높은 건 아니지만 저 또한 난감합니다. 한국 전통음악은 기본적으로 합주 중심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독주곡 종류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음반 작업을 하는 이유는 20대 젊은 시절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개인 녹음실 대여나 녹음 등에 비용은 좀 들었지만, 최소한으로 했고요. 음반 디자인은 ‘꿈꾸는 청춘몽’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제 영상도 ‘꿈꾸는 청춘몽’ 채널에 올라가 있는 거고요.”
대금 40여 개 보유… 곡에 맞춰서 사용
“악기가 가진 담백한 핵심만 가지고
감동 주는 연주하기가 가장 큰 숙제”
현재 개인 음반은 대금정악 중심으로, 가곡 빼고는 거의 다 했다고 한다. 앨범은 7장이다. 이다음은 민속악인데 녹음 계획은 지난해 말부터 세워서 지난달 말부터 녹음에 들어가 올 연말께 발매할 예정이다.
“이번에도 딱히 지원받아서 하는 건 아닙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만의 경력을 쌓는다는, 제 책장을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것 덕분에도 기본적인 실력을 많이 키웠습니다. 대금 자체가 너무 재밌기 때문에 이런 작업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연주자는 나이가 들수록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대금 연주자에겐 육체적 반응 속도나 호흡, 핑거링이 중요한데 관리하더라도 점점 떨어질 수밖에-없는데 할 수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사실 손 수석의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올 초에야 수석이 되긴 했지만, 수년 전 시립예술단 전체 오디션을 치렀을 때도 실기 성적으론 1위였다. 하지만 근속 연수 등이 고려되면서 수·차석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평단원에 머물렀다. 근년 들어 오디션 시스템이 바뀌었고, 수석도 응모제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 수석 오디션 공고가 떴고, 고민 끝에 응시해 수석이 될 수 있었다. 심사는 전원 외부에서 맡았다. 알게 모르게 연공서열을 따지는 국악계로선 놀랄 만한 일이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8명의 수석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다. 교향악단과는 다르게 국악은 30대 수석이 드물기 때문이다.
“수석에 응할까 말까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에요. 주위에서 용기를 주셨고, 무엇보다 당시 수석을 하고 있던 선생님이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더 이상 응모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셔서 홀가분하게 지원했습니다. 나이도 어린 편이지만 비상임부터 치면 10년 넘게 막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부담스럽긴 하죠. 그래도 젊은 연주자들, 잘하는, 의식 있는 연주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해서 국악관현악단이 젊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젊다는 건 확실히 도전의 기회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의논하던 중에도 그가 참 바쁘게 산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막상 얼굴을 마주한 뒤에도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도모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연습실을 찾았다가도 수많은 대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보유 중인 대금은 마흔여 개에 달했다.
“음악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악기마다 수작업으로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악기마다 음정도 미세하게 다르고, 음색도 다르고, 연주할 때 드는 힘듦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실내악을 할 땐 이 악기, 관현악은 이 악기, 솔로 협연은 이 악기, 솔리스트 연주는 이 악기 등으로 연주 성격에 따라 다른 악기를 사용합니다. 어떤 연주 때는 두 개를 준비해서 곡마다 다른 악기를 사용합니다. 어디 좋은 대나무가 나왔다거나 최신이라고 하면 일단 가서 불어 봅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요. 좋은 걸 보면 소장하고 싶고요. 그러다 보니 이만큼 모은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에 따라선 대금 한 대로 평생을 쓰기도 하지만 손 수석은 그렇지 않다. 전통은 고집하는데 창작은 열린 마음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편으론 까탈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곡마다 다른 악기라니. 그것도 아주 미세한 음색 차이로.
“국악관현악단 소속이긴 하지만 실내악 단체 활동이나 개인 독주도 비중을 두려고 합니다. 국악을 아는 분들은 알지만 모르는 분은 너무 몰라서 그 간극을 줄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악의 대중화 못지않게 국악 자체를 왜곡해서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인 활동일수록 아카데믹하고 전통적인 부분을 중시해서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있고요, 실내악 앙상블이나 예술감독으로 참여할 때는 훨씬 대중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접목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개인 독주회는 2016년 이후 5회를 열었다. 타이틀은 ‘음악공방’이다. 음악이라는 분야 자체가 자기만의 공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을 잡았다. 이 공방에서 여러 가지 음악을 창작하고 보여주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단다.
“전통음악 연주자로 성장하다 보니 창작음악은 그 이후에 하게 되는데 저 역시 그런 순서를 따라서 초반엔 전통음악으로 꾸몄고 최근엔 창작음악도 합니다. 퓨전 창작이 아니라 순수 현대음악입니다. 대금이나 민족음악 악기로 창작곡을 연주하는데 그렇게 해야 독주회는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올 4월에 가졌던 독주회는 남달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 대금 산조는 대략 세 가지 유파, 즉 원장현류, 이생강류, 서용석류가 주를 이룹니다. 부산은 강백천류가 있지만, 전공자나 전문 연주자에겐 보급이 많이 안 돼 있는 편입니다. 강백천류 보유자가 김동표(1941~2020) 선생이었는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사실상 맥이 끊긴 셈이기도 하고요. 4월 독주회 땐 강백천류 원형 LP음반을 복원(복각)해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요즘 형식에 맞게 26분짜리 연주곡을 선보였습니다. 다른 곡도 마찬가지로 강백천 선생이 남긴 것에서 따왔고요. 다음 독주회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김동표 가락으로 할 예정입니다. 그다음 독주회는 제 가락으로 체화시킬 예정이고요.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최근엔 공연 음악감독 의뢰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뮤지컬, 인형극, 콘서트, 연극 등의 음악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도 하고, 협업도 한다. 전통음악 소스를 가지고 실용이나 현대적인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곡 활동도 하고 있다.
“저는 감성적 접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명확하게 집어 주는 선생님이 좋았어요. 그게 아닐 때 답답한 마음도 컸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는 구슬프게, 혹은 비통하게, 애간장을 녹이듯 하라는데 그게 너무 추상적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음악 자체는 살아 있다 보니 이 악기가 가진 담백한 핵심만 가지고도 감동을 줄 수 있는데 말이죠. 본질에 충실해서 대금이 가진 핵심으로만도 감동을 줄 수 있게끔 연주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국악 전반이 관심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대금이라도 사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늘 불던 대금이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알려 달라고 했다. “잘 안 되는 순간은 소리가 잘 안 나오는 순간일 텐데, 그러면 무너지기 십상이죠. 그런 상황이 있을 땐 바람 소리를 더 내려고 합니다. 입술 근육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을 때 생기는 경우여서 음색 변화를 통해 그 순간을 모면하기도 하고요.”
손한별은 누구?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 박사(D.M.A)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전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전수자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대금 이수자
제15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부산대학교 예술영재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음악학과 강사
동의대학교 평생교육원 객원교수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
HOS Music 대표
<프로듀싱 앨범>
음악대륙 가이아 정규 1집(프로듀싱)
음악대륙 가이아 정규 2집(프로듀싱)
김원지의 해금 1집(프로듀싱)
효원레인보우국악오케스트라 1집(프로듀싱)
<개인 음반>
손한별의 대금정악I 평조회상
손한별의 대금정악II 현악영산회상
손한별의 대금정악III 관악영산회상
손한별의 대금정악IV 여민락
손한별의 대금정악V 취타
손한별의 대금정악VI 자진한잎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