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Z세대 Y2K 열풍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전 세계는 ‘Y2K’ 공포에 떨었다. 컴퓨터가 2000년 1월을 1900년 1월로 잘못 인식하는 오류를 일으키면 전산 시스템이 운영되는 모든 분야에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불안감이다. 심지어 금융 거래 전면 중단, 항공기 추락, 핵무기 발사 등으로 지구가 마비되고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추측마저 나돌았다.
이는 당시 컴퓨터가 메모리 사용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네 자릿수 연도 표시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도록 개발된 데 근거했다. Y2K는 연도를 뜻하는 ‘Year’, 1000을 가리키는 ‘Kilo’의 첫 글자와 숫자 2가 합성돼 만들어진 용어다. 2000년이 밝자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구촌은 평온을 되찾았다. Y2K 위기설은 괜한 걱정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컴퓨터 공학자들의 경고와 각국 정부·기업들의 철저한 대비책 덕분에 극복했을 게다. 결과적으로 새 천년 들어 공포가 해프닝으로 일단락돼 Y2K란 말은 빠르게 잊혀졌다.
그랬던 Y2K는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의 세월이 흐른 근년에 친근감 있는 단어로 되살아나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Y2K는 20여 년 전 크게 우려된 컴퓨터 버그가 아니라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유행한 패션을 지칭한다. 넓은 의미로는 같은 시기의 생활 양식도 포함한다.
Y2K 패션이 Z세대로 불리는 20대 사이에 유행이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이 같은 현상은 올 들어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뜨겁게 확산하고 있다. 청년층은 1990년대 말 유행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으며 인기 걸그룹 ‘뉴진스’가 Y2K 감성을 반영해 착용한 패션에 열광한다. 열쇠고리와 헤드폰, 필름 카메라, 발목 토시 등은 Z세대 애용품으로 각광받는다. 기성세대에게는 한물간 물건일지라도 신세대의 눈에는 매우 신선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싶다.
Y2K 열풍 속에 ‘복고풍’ ‘레트로’(Retro·복고) ‘뉴트로’(New+Retro) 같은 단어가 자연스레 유행어로 떠올랐다. 이를 틈타 산업계 전반에 추억을 자극하는 광고와 마케팅 행사가 늘고 가요, 드라마 등 문화·예술계 창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세간의 말이 실감날 정도다. 불경기엔 세 가지 변화된 소비 성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복고풍이 성행하고 절약을 위해 선택과 집중이 중시되며 자극적인 먹거리가 인기라는 것이다. Y2K 열풍이 악화된 경제 상황을 반증하는 셈이라 달갑지만은 않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