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대관리업체 ‘이중계약’ 수천억 피해 예상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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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 한 오피스텔 관리업체
임대인에 임차인 계약 거짓 통보
600세대 대상 보증금 ‘먹튀’ 의혹
연락두절에 주민 고소로 수사 착수
전국 40곳 피해액 수천억 이를 듯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부산 동래구의 한 오피스텔을 관리하던 임대업체가 ‘이중계약’으로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로 인해 세입자 수백 명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고, 부산에서만 피해 규모가 1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해당 업체는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전국에서 임대사업을 벌여 전체 피해 금액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동래경찰서는 13일 임대관리전문업체 A업체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업체는 2018년부터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한 600세대 규모 B오피스텔의 임대차계약을 진행하며 세대당 1000만~4000만 원 상당의 보증금을 빼돌린 혐의(사기)를 받는다.

오피스텔 임대인들은 A업체와 계약을 맺고 운영을 맡겼다. 임대인들이 A업체에 권리를 위임하면 A업체가 임차인과 계약을 진행하고, 계약이 끝날 때까지 A업체 담당자가 해당 호실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임차인들은 A업체에 월세를 납부했고 임대인들은 A업체로부터 매월 임대료를 받았다. 해당 업체는 약 두 달 전부터 재정난을 이유로 임대인들에게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임대인들에게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연락을 피하는 방식으로 임대료 지급 일자를 정해주지 않았다. 운영하던 SNS 계정도 폐쇄했다.

A업체가 임차인과 임대인에게 계약 내용을 각각 다르게 적용하는 이른바 ‘이중계약’을 체결한 탓에 세입자들은 임대차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곧바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예를 들어 A업체 측은 임차인에게 보증금 4000만 원, 월세 13만 원을 조건으로 제시한 뒤 계약이 체결되면 임대인에게는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0만 원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보증금 명목으로 500만 원을 임대인에게 전달한 뒤 나머지 금액은 A업체가 가져가 운용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A업체로부터 보증금을 받지 못한 임대인들은 계약종료 의사를 밝힌 임차인에게 지급할 수천만 원 상당의 보증금을 갑자기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임차인은 퇴실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규모는 세대당 수천만 원 상당이다. 입주민들은 B오피스텔에서만 100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입주민들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책 회의에는 임차인, 임대인 등 50명 이상이 참석했다. SNS 오픈 채팅방에는 300명을 넘는 인원이 가입했다. 한 임대인은 “보증금은 A업체에서 모두 부담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어 안심하고 운영을 맡겼다”면서 “최근 업체 직원들이 다 그만뒀다고 들었다. 빚을 내서 보증금 4000만 원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입주자는 “갑작스레 이사를 가야 하는 경우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나가거나 심한 경우 소송까지도 이어질 수 있어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업체가 부동산임대관리 부문에서 받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거나 5년간 무사고 경력을 내세우며 사업을 확장한 탓에 피해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A업체는 부산에 위치한 다른 사업장 1곳을 포함해 서울, 경기도, 인천 등 전국에서 40개에 육박하는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충남 서산경찰서, 인천 중부경찰서 등도 피해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A업체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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