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늘 그렇듯, 또 정쟁에만 몰두할 건가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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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사회부 차장

말 많고 탈 많았던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이하 잼버리)가 지난 11일 폐영식과 함께 K팝 콘서트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잇단 무차별 살인과 무분별한 살인 예고글은 물론 1951년 이후 한반도를 관통하는 첫 태풍으로 꼽혔던 제6호 태풍 ‘카눈’도 무색할 만큼, 잼버리는 그야말로 모든 뉴스를 집어삼켰다.

잼버리 개최 전 TV에서 잼버리 조직위원회 관련 인사의 인터뷰를 우연찮게 봤다. 당시 출연했던 인사는 잼버리에 대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알리는 동시에, 전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새만금에서 하나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허상이었음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개막 첫날부터 운영 미숙과 부실 운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일간지와 SNS 등에서 쏟아진 사진에는 6년여간의 준비기간이 무색하리만치 엉망진창인 현장이 날것 그대로 담겼다. 이후 이뤄진 언론 통제와 관계부처의 미숙한 대응은 부실한 대회에 기름을 부었다.

잇단 보도를 통해 대회는 총체적 난국임이 드러났다. 그늘 없는 야영장에선 유례없는 무더위로 온열 환자가 속출했다. 불결한 샤워실과 화장실, 부족한 식수, 해충은 물론 야영장 내 마트 바가지 논란까지 150여 개국 4만 5000명 대원들이 겪은 고충이 한둘이 아니다.

1100억 원이 넘게 투입된 예산 중 조직위 운영에만 740억 원이 소요된 것이 알려지면서 담당 공무원들의 무더기 외유성 출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 등 일부 국가 대원들이 조기 퇴영을 결정하고 외신보도까지 잇따른 와중에 태풍 카눈까지 덮쳤다. 태풍을 피해 새만금에서 벗어난 세계 각국 대원들은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형 체육관에 한꺼번에 배치된 일부 한국 대원들의 역차별 논란이 빚어졌고, 때아닌 동원령으로 전국이 피로감으로 물들었다. 대회 부실 운영 무마용으로 K팝이 손쉽게 소비된 점은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을, 국민들이 나서 메운 형국이다. 준비만 제대로 됐다면 들지 않았을 수백억 원의 추가 경비 또한 결국 국민 몫이다.

이제 남은 건 철저한 진상 및 책임 규명이다.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감사원에서 전방위적인 감사를 준비 중이고, 16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란다. 1년여 전부터 문제점이 다각도로 지적됐음에도 왜 변화가 없었는지, 예산이 어디서 어떻게 쓰여졌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하고 해당 기관과 수장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책임 소재를 놓고 또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여당은 여성가족부 등 지원부처와 지자체의 책임을, 야당은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건 뻔하디 뻔한 정쟁이 아니다. 엑스포 유치를 3개월여 앞둔 지금 잼버리 파행으로 엑스포는 물건너갔다거나,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는 시대에 지방정부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등의 헛말을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국민은 달라졌는데 정부와 정당만 늘 그렇듯 제자리에 머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의 행태를 지켜봐야만 하나.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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