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정치개혁이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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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편과 동일시
21대 총선 준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위성 정당 출현 ‘동물 국회’ 오명만
국민의 대표 선출 방식 중요한 일
정치 유불리만 따져 밥그릇 싸움 변질
민의에 다가서는 개혁 본질 깨우치길

오랜만에 ‘동물 국회’를 다시 본 건 4년 전이었다. 2019년 4월, 국회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과 공수처 설치 등을 포함한 검찰 개혁 법안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두 사안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 등 군소 야당들과 합의해 해당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안건은 상임위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한국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이 법안 접수를 막기 위해 국회 의안과를 육탄 봉쇄하면서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주먹다짐이 오갔고 쇠 지렛대와 망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동물 국회’의 등장은 2011년 가을 한미 FTA 비준안 정국 이후 8년여 만이었다. 당시 국회는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물리적 대치가 끊이지 않자 이를 근절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엄격한 국회선진화법이라 할지라도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을 막을 수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그때 정치권은 선거제도 개혁에 뭐라도 씌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많은 이들이 선거법만 바꾸면 한국 정치에 일대 변혁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소선거구제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갈등과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다.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이 제도의 도입에, 혹은 반대에 사활을 걸었다.


몸싸움을 불사하며 우여곡절 끝에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를 바꾸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비례대표 의석 확대는 국민 반발에 대한 우려로 처음부터 손도 대지 못했다. 논의 과정에서 지역구 의석과의 연동률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비례 의석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하자며 캡(cap·상한)을 씌웠다. 급기야 거대 양당이 위성 비례 정당을 출범시킴으로써 제도를 도입한 의미 자체가 무색해졌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들은 초선 의원이고 최고위원이고 할 것 없이 막말 등 온갖 구설에 오르내렸다. 지금도 21대 국회에는 ‘역대급 비호감 국회’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다.

정치권에서 개혁,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많은 노력은 대개 선거 방식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 국회의원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당 대표를 누가 뽑을까 하는 것들이다. 올해 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논했다. 그들은 선거구 크기, 비례대표 선출 방식 등에 따른 세 가지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활동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도 다르지 않았다. 혁신위는 지난 10일 대의원제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혁신안을 제안한 뒤 활동을 종료했다.

국민의 대표를 어떻게 선출하느냐는 중요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선거구제에서 비롯되는 사표 발생을 줄이고 국회 구성의 불비례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게 개혁의 전부가 되면 곤란하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문제는 이것이 전부로 인식되며 여타 논의를 모두 잠식한다는 데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만 보더라도 여야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협치가 실종되면서 각종 민생법안이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다.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에 신경도 쓰지 않던 국회가 선거 직전 비판 여론에 직면해 졸속으로 ‘민식이법’을 처리했던 사건은 유명하다. 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은 무려 1만 5000여 건에 달한다.

누구를 위한 개혁이고 혁신인가? 이 물음 앞에 정치권의 개혁론은 공허하다.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대의원이냐 권리당원이냐 하는 논쟁들은 보통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논쟁이 벌어지다 보면 어느새 국민의 뜻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저마다의 유불리만 남는다. 그쯤 되면 선거제도나 전당대회 룰을 바꾸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 이런 주객전도는 국민 눈에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이참에 정치권이 한 발짝 떨어져 지금의 상황을 진단해 봤으면 좋겠다. 국민은 아무 관심 없는데 우리만 에코 체임버(반향실)에 갇혀 선거제도 개편만이 정치개혁이요 혁신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러는 사이 진정 국민이 원하는 일들은 등한시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를. 어쩌면 평범한 국민은 국회의원, 당 대표를 어떻게 뽑는가 하는 문제보다 정치인들의 저질스러운 발언을 근절하고 지역민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치 현수막을 줄이는 게 더 정치 혁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지만, 결국 정답은 민의와 더욱 가까워지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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