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다시, ‘부산다운’ 부산을 위하여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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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택 서울지사장

최고 수준의 자연·교통여건 갖춘 도시
부산, 젊은 층 외면할 만큼 경쟁력 없어
정치인 도전의식 없이 샐러리맨 전락
부산 출신 고집하는 ‘쇄국주의’ 갇혀
역동성, 개방성, 도전정신 다시 살려
한국 넘어 세계 일류 도시 발돋움해야

부산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산과 강과 바다를 동시에 접하고 있다. 세계 그 어디를 가봐도 부산만 한 자연 여건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여기에 공항, 철도, 항만 등 교통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다. 하지만 부산시민들 중 일류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시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실제로 부산의 여건은 최악의 수준이다. 한 도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역내총생산(GRDP) 부문에서 부산은 거의 꼴찌 수준이다. 부산은 2964만 원(2021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4012만 원)에 훨씬 못 미친다. 전국 17개 시도 중 15위이다. 부산보다 못한 도시는 대구와 광주 2곳뿐이다. 인구 감소도 심각하다. 부산 인구는 지난 10년간 23만 명 가까이 줄어들어 330만 5000명(7월 현재)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32만 명 이상 늘었지만 부산은 대폭 감소했다. 지난 1년 동안 줄어든 부산 인구가 3만 명 정도 된다.


일자리의 근간인 기업 사정은 더욱 엉망이다. 전국 100대 기업(2021년 기준)에 부산 업체는 단 한 곳도 들어 있지 않다. 겨우 1000대 기업에 27개 포함돼 있을 뿐이다. 그마저 일부 기업들은 부산을 떠나려고 한다. 부산으로 오는 기업은 거의 없고 떠나려는 기업만 즐비한 상황이다. “먹고살게 없어서 부산을 떠난다”는 젊은이들의 하소연에 우리 기성세대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 전체가 겪는 문제이긴 하지만 부산이 유달리 심각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산이 원래부터 ‘부실 투성이’였나? 아니다. 부산은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소 무모할 정도로 도전 정신이 강한 도시였다. 국내 그 어느 도시보다 결속력도 뛰어났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부산의 역동성이 큰 역할을 했다. 부산은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연 ‘개방의 도시’였다. 한때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한 도시 중 하나가 부산이었고, 서울은 물론 호남이나 충청도 사람도 아무 거리낌 없이 품어준 도시가 부산이었다.

도전 정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영삼은 20대에 대권 도전을 선언한 뒤 온갖 역경을 딛고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이 됐다. ‘부산 촌놈’ 노무현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에서 무모하게 대권에 도전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가요와 영화, 방송 등 ‘K컬처’를 주도한 인사들 중에 부산 출신이 많은 것도 특유의 도전정신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역동성과 도전정신은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타지역 출신은 철저히 배척하고 오로지 ‘부산 토박이’만 찾는 ‘신(新) 쇄국주의’에 갇혀 있다. 부산에 자리 잡은 각종 공공기관의 장(長)은 부산 출신만 임명돼야 한다는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 이러다가 ‘글로벌 금융도시 부산’의 핵심인 산업은행 이전을 완료한 뒤 그 수장을 부산 출신으로 앉혀야 한다고 ‘생떼’ 부리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정치인들은 더욱 한심하다. 상당수 부산 국회의원들은 정치인이 아닌 샐러리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치적 도전의식은 거의 없다. 그냥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액 연봉(1억5000만 원)에 만족하고 산다. 그렇다고 결속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2030월드엑스포 유치에 부산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렇지만 적잖은 부산 정치인들은 “유치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이번에 안 되면 5년뒤 유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엑스포 유치 지원을 핑계로 틈만 나면 외국을 드나든다. 개인플레이만 만연할 뿐 팀워크를 찾아보기 힘들다. 1년이면 세상에 완전히 바뀌는 초스피드의 시대에 5년 뒤에 엑스포를 유치한다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5년 뒤엔 중국이 엑스포 유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우리한테 더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그 핵심은 ‘부산다움’을 되찾는 것이다. 부산의 장점인 역동성과 개방성, 도전정신을 부활시키자. 대충해선 안 된다. 죽기 살기로 ‘부산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우리가 쳐놓은 ‘인(人)의 장막’을 당장 걷어내고 문호를 대폭 개방하자. 우리 지역의 모든 자리를 비(非) 부산 출신들에게 양보한다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으로 재무장하자. 또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결속력을 과시하자. 그러면 부산은 ‘대한민국 넘버2’를 넘어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다. 부산은 그럴만한 역량과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가.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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