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잠자는 '구하라법'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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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지극한 모성애는 자연생태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하와이대 해양포유류연구소는 2020년 혹등고래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화제가 됐다. 혹등고래를 추적한 결과 어미는 새끼를 젖 먹여 키우는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곁에서 새끼를 보살폈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고래연구회는 최근 어미 민부리고래가 죽은 새끼 주변을 돌면서 머리를 만지며 애도하는 모습을 관찰해 국제 학술지에 보고했다. 고래도 새끼를 잃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도 해상에서 남방큰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서귀포해양경찰서가 신고받고 입수해 확인한 결과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등과 앞지느러미 사이에 얹고 이동 중이었다. 구조대원이 다가가자,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이리저리 옮기며 이동했다. 머리와 등으로 새끼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연신 움직였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죽은 새끼를 살리려고 계속해서 물 위로 올리는 행위로 고래의 독특한 습성이라는 것이다. 3월과 5월에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은 새끼를 업고 유영하는 돌고래가 발견됐다.

고래의 모성애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고래보다 못한 사람들 때문이다. 54년간 연락 한번 없다가 아들이 죽자 사망 보험금을 챙기기 위해 나타난 80대 친모가 세간의 화제다. 선원이던 김종안 씨는 2021년 1월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다 폭풍우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김 씨 앞으로 사망 보험금 등 3억 원이 나왔는데 김 씨를 버리고 사라졌던 친모가 나타나 챙겼다. 이에 김 씨의 누나가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고법이 17일 보상금의 40% 정도를 친모가 누나에게 나눠 주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는데 친모는 이마저 줄 수 없다며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김 씨의 누나는 “친모는 우리 남매를 찾기는커녕 따뜻한 밥 한 그릇 해 준 적 없는데 동생 통장과 집까지 자신의 소유로 돌려놓았다”며 “친모는 엄마도 사람도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현행 민법은 상속에 부모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육 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금지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2019년 ‘카라’ 멤버 구하라 씨 사망 후 20여 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구 씨 유산을 요구하자 오빠 구호인 씨가 이를 막기 위해 입법 청원한 것이다. 이제 상속에도 부모 자격을 따져야 할 때가 됐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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