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출구 없는 핵폐기물, 국가 미래 외면하는 정치권
여야, 특별법안 심사조차 못하고 지연
저장시설 포화로 원전 셧다운 불가피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폐기물을 영구 저장할 시설을 짓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방폐장법)이 21대 국회에서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관련 3개 법안은 2021년 9월부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지금까지 심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여야는 지난해 11월부터 9차례의 법안소위 심의를 거치면서 고준위 법 제정 필요성에는 공감했으나 각론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결국, 특별법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의 정쟁과 책임 회피 탓에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법안 심사가 표류하는 것은 여야가 정치적 잇속에 따라 서로 ‘니밀락 내밀락’ 한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은 특별법을 제일 처음 대표 발의하는 등 방폐장법에 적극적이었지만, 정권 교체 이후 친원전 정책으로 전환되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정권 교체 이후 야당 압박만 가속하면서 국가 미래가 걸린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변질된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기장, 경주, 울진, 울주, 영광 등 원전 소재 5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국회로 몰려가 생존을 위협받는 주민들의 원성을 전달하고, 방폐장 조속 건립을 촉구했을 정도이다.
주지하다시피, 고준위 영구 방폐장 건설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문제다. 방폐장은 지금 당장 법을 제정해도 부지 선정에만 13년, 최종 완공까지 37년 이상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다. 하지만, 원전 안의 수조에 임시로 저장되어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7년 뒤면 가득 차게 된다. 현 정부 들어서 원자력 발전량 비중 목표를 2022년 29.6%에서 2030년 32.4%, 2036년 34.6%로 끌어 올려 임시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1~2년 앞당겨지게 된다. 핵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원전 가동과 신규 건설을 중단하는 사태가 닥칠 수도 있다. 2029년 전남 영광 한빛원전, 2030년 경북 울진 한울원전, 2031년 부산 기장 고리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차례로 포화된다.
고준위 방폐장 문제를 두고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비유하는 이유다. 그때까지 새 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전 가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태풍이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임시저장시설을 덮칠 경우 어떤 사태로 비화할지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21대 국회가 10월 국정감사 이전에 특별법 처리를 하지 못하면 안전한 원전 운영과 안정적인 전기 공급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친원전·탈원전’ 어떤 정책이라도 영구 방폐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회가 당리당략에 빠져서 특별법 처리를 외면한다면 직무 유기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 방폐장법 제정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여야는 무책임한 정쟁을 그만두기 바란다. 올해 내로 특별법 통과를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