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과연 인류세인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내년 8월 부산서 IGS 개최
새 지질시대 ‘인류세’ 공식화
기후변화에 ‘극한’ 빈번 사용
‘끓는 지구’ 시대 본격화
인류 ‘지구사의 도전’ 직면
새로운 공부와 행동 요청

내년 8월 부산에서 국제지질학총회(IGS)가 열리며 여기에서 새로운 지질시대를 비준한다. 그러면 약 1만 1700년간 계속되어 온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로 공식화한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로 인류가 사는 지구 환경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을 뜻한다. 인류세는 2000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IGBP) 회의에서 네덜란드의 대기 화학자인 파울 크뤼천이 처음 쓴 말이다. 그는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에 살고 있다”라고 충격하였는데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에 시대를 뜻하는 ‘cene’을 덧붙여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신조어가 탄생하였다. 지질시대의 명명 권한을 가진 국제층서학위원회(ICS)는 2009년 그 산하에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만들어 인류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2019년 AWG가 인류세의 시작을 1950년대로 결정한 바 있다. 이 시기부터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어 인간 활동과 환경변화의 속도가 극적으로 증가한 소위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인류세는 ‘현재의 지질학적 시대,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시대’로 정의되어 있다. AWG는 지난 7월에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를 인류세의 시작을 보여 주는 표준 지층으로 지정하였다. 이 호수에 인간이 지구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한 증거가 퇴적되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인류세의 공식화 여부는 올해와 내년의 국제층서위원회가 실시하는 투표로 결정한다. 여기에서 60%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되면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IGS가 이를 비준하는 동시에 인류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살게 된다. 인류세에서 인간은 지구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행위자인데 이와 같은 인간의 힘이 기후 위기를 초래하여 자연의 힘과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인류세를 의미하는 핵심 척도는 곧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이다.

과연 인류세인가? 작금의 기후 위기가 과장되었다고 말하거나 이 또한 과학기술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원인 또한 급속한 산업화에서 찾는가 하면 대규모 경운(耕耘) 농업과 토양의 사막화에서 찾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한 결과임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비관이든 낙관이든 이제 인류는 지구 행성의 역사와 미래를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단지 이용하거나 인간의 배후에 신비로 존재하는 대상만은 아니다. 그 힘은 언제든지 인간이 만든 세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인류세는 인간의 힘과 자연의 힘이 수시로 충돌하며 마침내 그 극단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시대 개념을 내포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세와 기후 위기에 관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숙고가 간절하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의 여러 징후는 빈번하다. 지난해 8월 유럽에 5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 와서 9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또한 겨울에 맞은 이상 고온은 알프스와 피레네의 고산지대의 눈을 녹여 스키장이 문을 닫는 상황을 불러왔다. 이와 더불어 산불이 평년에 비할 때 3배 이상 늘었다. 기후와 관련하여 ‘전례 없는’ 혹은 ‘극한’이라는 수식어는 전 세계를 망라하여 매우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올해 7월 들어 이탈리아에서 40도가 넘는 기록적 폭염을 맞으면서 이를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로 명명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한 희생이 매우 컸다. 미국에서도 40도가 넘는 폭염에 사람이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는 한편 이란의 공항은 67도를 찍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이상기온은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영구동토를 위협하고 있어 그 속에 매장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방출하거나 바이러스 등이 활성화할 공산이 크다. 남아메리카도 40도에 육박하여 겨울이 사라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끓는 지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되었다.

기후 위기는 폭염의 지속뿐만 아니라 폭우와 폭풍을 동반하는 양상으로 극단화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해류의 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 만류가 멈추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끔찍한 예고가 있다. 남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해류의 순환이 붕괴한다면 그야말로 대재앙의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세계의 격변은 20세기와 같이 인간의 역사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에도 심각하게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류사뿐 아니라 ‘지구사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후 위기와 인류세에 처하여 새로운 공부와 행동이 요청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미래는 오지 않은 내일이 아니며 이미 우리에게 도착한 현실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