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흥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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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은 “풀이 되려거든 응당 난(蘭)이 되어라”고 읊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난은 워낙에 잘난 풀이다. 잎은 청초하고 꽃은 고고하다. 거기서 나오는 향은 또 얼마나 그윽한가.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범상치 않는 기품이 느껴진다.

그런데 난 키우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승진 같은 경사에 난을 선물로 받는 이들이 많지만 대부분 얼마 못 가 죽이고 만다. 행여나 잘 키워 꽃을 피우기라도 하면 그 노력과 인내심에 모두 경탄해 마지않는다. 난이란 게 원래 몹시도 까다로운 습성을 갖고 있어서다. 오죽했으면 가람 이병기가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라며 찬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말을 했을까.

사람이 온갖 정성을 들여 키워도 그러할진대 야생에서 난이 온전히 자라기란 대단히 드문 일일 테다. “모든 난은 멸종위기 식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난은 혼자서는 씨앗을 틔우지 못한다. 공생하는 곰팡이가 씨앗에 양분을 공급해 줄 때에만 가능한데,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세상에서 보기 힘들기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난이 대흥란이다.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하도 귀하다 보니 어디에서 발견됐다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뉴스가 돼 각종 언론 매체가 앞다퉈 보도할 정도다. 전남 해남의 대흥사 부근에서 처음 발견돼 대흥란이라 불리는데, 발아율이 극히 낮은 데다 환경 변화에 유달리 민감해 자생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금방 죽어 버린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대흥란 이식 성공 사례는 아직 없으며, 야생에서의 채취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대흥란을 두고 요즘 경남 거제에서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대흥란 최대 서식지인 거제 노자산에 부는 개발 바람 때문이다. 거제시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수년 전부터 골프장을 비롯한 관광단지 조성을 추진 중인데, 대흥란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 측은 대흥란을 딴 곳으로 옮겨 심으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환경단체들은 대흥란은 이식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원형을 보전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여기에 개발을 바라는 주민들의 입장과 환경 당국의 대처까지 얽히면서 사안은 복잡하게 흐르고 있다.

이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경남도다. 환경이냐 개발이냐 해묵은 논쟁이 여기서도 재연된 셈인데, 부디 깊고 넓은 성찰과 고민을 통해 우리 삶에 진정으로 이로운 결정을 내리기를 당부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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