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손질… 점차 사문화되는 '김영란법'
권익위, 명절 선물 한도 30만 원
식사비 3만 원도 추후 개정 검토
농수산계 '환영' 시민단체 '반발'
땜질 인상 반복에 실효성 떨어져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설·추석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을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는 등 추석·설 명절을 앞두고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몇 차례 손질되면서 김영란법이 사실상 사문화되는 분위기다.
권익위의 결정에 대해 수산업계가 즉각 환영 입장을 낸 가운데 “권익위 스스로가 금품 등을 제한하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또 훼손됐다”며 시민단체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22일 정부와 수산업계 등에 따르면 권익위는 전날 오후 진행한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참석 위원 11명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설·추석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을 기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선물 범위(최대 5만 원)에 농·축·수산물로 교환할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 상품권(기프티콘)과 영화·연극·공연·스포츠 등 문화관람권을 포함하기로 했다. 다만, 현금화할 수 있어 사실상 금전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백화점상품권 등 금액 상품권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수협중앙회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다음 달 추석부터 상향된 금액 수준으로 수산물을 선물할 수 있게 돼 수산물 소비 진작에 큰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추석 명절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이번 개정안이 조속히 시행되면, 수산물 판매가 활성화로 어업인의 소득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산물 선물 (가격 상한) 상향을 위해 노력해 준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농축산물 가격을 기존 1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상향한 것이다. 이 경우 평상시 선물 가액의 2배로 설정된 '명절 선물' 가액 상한은 현재의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2배가 가능한 명절 선물 가능 기간은 '설·추석 전 24일부터 설·추석 후 5일까지'다.
명절 농축산물 선물 가격은 작년 설부터 기존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됐으며, 이번에 약 1년 반 만에 한 차례 더 오르게 됐다. 다만, 현재 3만 원으로 규정된 식사비 한도를 5만∼1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은 이번에 논의되지 않았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전원위 위원들은 '청탁금지법'이 지닌 공정·청렴의 가치를 견지한 가운데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 비대면 선물 문화 등 국민의 소비패턴 등과 유리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식사비 조정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차후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원위에서 의결된 시행령 개정안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된다.
이에 참여연대는 ‘청탁금지법 추석선물가액 상향조정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금품 등의 수수를 제한하고 부정한 청탁을 금지하자는 취지로 권익위가 제안해 만들어진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했다”며 “도대체 30만 원짜리 농수산물 선물이 어떻게 미풍양속이 되고 의례적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