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공원은 채우는 곳이 아니라 비우는 곳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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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부산시민공원 개장 10년
월평균 방문객 60만~70만 명 정체
접근성 문제 여전해 생활 속 공원 한계
시민 참여 통한 창조적 공원 문화 숙제
정체성 없고 여기저기 활용 움직임만
새 출발을 위한 시민사회 지혜 모아야

‘100년의 기다림, 영원한 만남.’ 2014년 5월 1일 부산시민공원 개장은 이 역사적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개장식은 간소하게 치러졌지만, 공원 개장의 역사적 의미까지 퇴색될 수는 없었다. 일제 강점과 미군 주둔, 우리 땅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시민들의 저항과 반환 운동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공간이 바로 부산시민공원이었다.

일제는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후 이 터에 경마장을 만들었고 동남아시아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와 군사 훈련소로 활용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미군이 주둔해 1950년 부산기지사령부인 캠프 하얄리아를 설치했고 더 이상 시민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1990년대 ‘금단의 땅’을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반환 운동이 불붙었다. 하얄리아 인간 띠 잇기와 서명 운동이 확산했고 마침내 미군은 2004년 7월 부지 반환을 결정했다. 부산시는 하얄리아 부지를 즉각 근린공원으로 지정해 공원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 땅 하얄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는 ‘하얄리아 시민공원 추진 범시민운동본부’로 전환됐고 반환 부지의 난개발 방지와 시민공원 조성을 위한 운동에 나섰다. 반환 협상을 둘러싼 한미 간 지리한 공방이 이어졌고 2010년 1월에야 미군으로부터 열쇠를 넘겨받아 공원 조성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부산일보〉 주도로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하얄리아 공원포럼’이 결성돼 공원의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었고 시민 참여 숙의 기구인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공원 조성과 운영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부산시민공원이다. 부산시민공원에서 ‘시민’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이즈음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런던에는 하이드파크가 있고 서울에는 서울숲이 있다면 부산에는 부산시민공원이 있다는 말이 생겼다.

부산시민공원 개장 10년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그 세월 생활 속 문화 공원을 향한 시민들의 꿈은 얼마나 자랐을까. 센트럴파크의 꿈은 멀다 해도 서울숲에 견줄 만한 부산시민공원의 정체성은 만들어져 가고 있는가. 아쉽게도 관광객들이 찾는 부산의 핫 플레이스는커녕 시민의 사랑을 받는 도심 속 생활 공원으로 자리 잡는 데에도 여전히 한계가 있는 듯하다. 개장 효과로 한 달 평균 100만 명을 웃돌던 방문객은 개장 이듬해부터 월평균 60만~70만 명 수준에 정체돼 있으며 올해 들어서도 7월 말까지 월평균 방문객은 65만 명 수준이다.

공원이 시민들의 일상 속 여가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자리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그러나 개장 10년이 되도록 공원의 접근성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서면 도심과 부전역, 송상현광장과의 단절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난제다. 부전천 물길로 공원과 서면 도심을 연결하려던 부전천 복원 사업은 중단과 재추진을 반복하고 있으며 부전역 역세권 개발도 진척이 없다. 부암고가교 철거도 하세월이다.

공원 개장 당시부터 시민 참여 활성화를 위한 공원 운영 거버넌스 논의가 많았지만 부산시설공단이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센트럴파크의 컨서번시나 서울숲의 서울그린트러스트와 같이 시민들에 의한 공원 운영은 애초 역부족이었다. 자연히 공원 운영과 활성화를 위한 시민 참여는 멀어져 가고 있다. 시민공원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지만 공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린 콘텐츠로 시민들에게 각인되는 행사가 없는 이유다. 공원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고 창조의 대상이라는 말은 시민공원과는 먼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시민공원을 주인 없는 빈 땅으로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공원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원의 주인인 시민들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부산시민공원이 개장 10년에도 불구하고 공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제대로 만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원은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비우는 공간이다. 공원은 언제나 비어 있는 넉넉함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그 속에 채워야 하는 것은 시민들의 창의적 활동으로 만들어 가는 공원 문화다.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가 “지금 이곳(센트럴파크)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와중에 부산시민공원 수목의 생육이 부진해 정밀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공원 문화만 자라지 못 한 게 아니라 수목도 자라지 못 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부산시민공원 전반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2024년 5월 1일 개장 10주년에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시민 사회의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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