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영의 법의 창] 정당 현수막 무법지대 이대로 두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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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장

무더위와 사회 불안의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여름이다. 그런데 한숨 돌리려 나선 산책길에도 불편함이 있다. 보려 해서 보이는 경우보다 그 존재 자체로 보게 될 수밖에 없는, 바로 정당 현수막들이다. 바야흐로 전국이 현수막 무법지대라 할 만하다.

난립이라 할 만큼의 개수도 문제지만, 독설을 넘어선 막말·비방과 혐오·가짜 뉴스에 편승하거나 인신공격성 문구 등의 수준 낮은 표현들이 더 문제다. 내년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도 이렇다면, 총선 정국이 다가올수록 정치선전용 현수막 문제는 더 악화될 것임이 자명하다.

막말·비방 등 수준 낮은 문구 홍수

교통안전과 도시 미관 저해 심각

정치인과 정당의 자성과 고민 필요

현수막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되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옥외광고물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옥외광고물들은 옥외광고물법상의 표시·설치에 관한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의 적용 대상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경관과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공중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며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의 표시·설치 금지가 그러하다.

다만 옥외광고물법에서도 현수막 표시·설치에 대한 허가나 신고, 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있다. 관혼상제, 학교행사, 종교의식, 시설물의 보호·관리, 안전사고 예방, 교통 안내, 긴급 사고 안내, 미아 찾기, 교통사고 목격자 찾기를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 등.

하지만 정치인의 정치적 현안이나 정당 정책에 대한 현수막, 소위 ‘정당 현수막’의 표시·설치가 자유롭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2022년 6월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정당법상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현수막은 15일 이내에서라면 개수·문구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옛 옥외광고물법이 정당 활동의 일환인 현수막 게시 등에 대하여 허가·신고 또는 금지·제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정당법상 보장된 정당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발생하게 한다는 점을 감안한 개정이었다. 정당법은 정당이 특정 정당이나 공직 선거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함이 없이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하여 홍보하거나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을 통상적 정당 활동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 현수막의 현실은 입법 취지와 다른 것 같다. 수적으로도 이미 ‘현수막 홍수’이고, 표현 내용상의 부적절함으로 인한 실제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법 시행 이후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 2배 이상 증가,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사고 8건 발생이라는 행정안전부 자료도 정당 현수막이 국민 생활에 불편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이런 정당 현수막의 폐해를 제재할 근거나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국회의 입법적 조치는 없다. 정당 현수막 난립에 따른 보행자와 차량 통행의 안전 위험, 도시 미관 저해, 일반 시민과의 형평성 문제 등의 이유로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쏟아지는 상황임에도 그렇다.

이에 지난 3월 부산광역시 등은 정당 현수막의 수량과 설치 장소 제한 등을 담은 옥외광고물법 개정 의견을 행정안전부에 건의했다. 행정안전부도 5월 8일부터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현수막 표시나 설치 방법·장소에 관한 것으로 문구 제한 규정은 없다. 선관위나 지자체가 사안별로 관여해 보지만, 근거 규정이 없다는 문제점은 그대로다.

올해 6월부터 인천광역시는 정당 현수막 내용에 대한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현수막에 혐오·비방의 내용이 없어야 함”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규정을 제정해야 하는 입법적 한계 때문에, 상위법에 없는 내용을 제정,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 된다.

현재 국회에도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되어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이들 개정안은 정당 현수막에 대해 표시 방법·기간·장소·개수에 대한 제한 등을 추가하여 정당 현수막 난립을 해소하려는 것에 그칠 뿐이다. 현행법상 다른 광고물의 경우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 또는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나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내용”은 광고물에 표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 현수막의 표시 내용은 또 예외여야 하는가. 정치인과 정당의 자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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