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악화·소비심리 위축에 부산 법인 신설 급감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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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의 상반기 신설 현황 조사

2310개 그쳐 1년 새 30.4% 감소
부동산·장비임대업 급감 두드러져
불황 강한 소자본 법인도 감소세
“원청기업 관리 경제 체력 키워야”

코로나19에도 꾸준하던 부산의 법인 신설이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자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한 제조업 위주의 창업이 아니라 소규모 부동산 관련 창업이 주를 이룬 결과라는 평가다. 지난 6월 부산 동구 유라시아 플랫폼에서 열린 창업 관련 행사 ‘슬러시드’. 부산일보DB 코로나19에도 꾸준하던 부산의 법인 신설이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자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한 제조업 위주의 창업이 아니라 소규모 부동산 관련 창업이 주를 이룬 결과라는 평가다. 지난 6월 부산 동구 유라시아 플랫폼에서 열린 창업 관련 행사 ‘슬러시드’. 부산일보DB

건설사를 다니다 퇴직한 A 씨는 올해 초 부동산컨설턴트 사무실을 차리려다 끝내 미루기로 결심했다. 직장 생활에서 쌓은 업계 노하우만으로는 도저히 바닥 친 건설 경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A 씨는 “주택 거래도, 아파트 분양 대행도 일감 자체가 모자라다 보니 이제는 대형 법인까지 일감을 찾는 데 혈안”이라며 “이 바닥이 1000만 원 미만의 자본으로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뛰어드는 사람도 많았는데 올해는 부동산 시장 자체가 멈춰선 느낌”이라고 전했다.

부산의 상반기 법인 신설 건수가 서비스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1년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기간에도 굳건하던 부산의 법인 신설 건수가 부동산 경기 악화로 관련 업종 창업이 급감하자 부실한 뼈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부산상공회의소는 22일 2023년 상반기 부산 신설 법인 현황 조사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 부산의 신설법인 수는 2310개로 지난해 동기 3321개에 비하면 30.4%나 급감했다.


부산상의는 해를 넘긴 고물가와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인해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하방성이 굳어지면서 엔데믹 이후 고용을 창출할 창업 시장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설 법인이 줄어든 분야를 살펴보면 대부분 부동산 관련업이다. 부동산 및 장비임대업 법인은 지난해 상반기 800개체가 신설됐지만 올해 상반기 342개체에 그쳐 신설 건수가 무려 57.3% 줄었다. 건설 관련업도 지난해 343개체 신설됐던 법인이 올해 216개체 신설로 37.0%가 급감하면서 창업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금리가 인상되고, 사업자 PF가 막히면서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서 빠르게 이탈한 것이 원인이다.

이 같은 지표 공개로 최근 3년간 상반기에 3300개 이상 법인 신설이 꾸준했던 것이 부산의 창업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라 풍부한 유동성에 소규모 부동산 법인이 난립했기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부산은 여전히 미분양이 늘고 전세가와 매매가가 하락세다. 법인 신설을 결심했던 부동산업과 건설 관련업 종사자의 창업 기피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초기 자본금 5000만 원 이하의 소자본 법인 신설마저 줄어 경제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부산은 소자본 법인 신설이 지난해보다 800개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폐업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 소자본 법인은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이 분위기마저 꺾여 경기 활력이 바닥을 친 셈이다.

지역 상공계에서는 고부가가치 사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제조업 원청기업을 관리하면서 지속해서 경제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진다. 부산의 주력 업종인 조선기자재와 자동차부품은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안타깝게도 법인 신설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주력업종 법인 신설은 지난 6월 383개로 조사 직전인 5월과 비교해 보합세를 보였다. 주력 업종의 업황은 나아졌지만 공공요금과 인건비가 한꺼번에 인상되면서 매출 증가보다 경상비용 부담이 확대로 창업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부산상의 기업동향분석센터 박호성 주임은 “고금리와 고물가 등 복합위기로 창업시장에 부담이 지속적으로 가중되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부산시가 경기 부양과 창업시장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대책을 내어놓을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 분야에서 법인 신설이 급감하고 있지만 서비스업만은 화색을 보였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재개되고 환율이 안정화되면서 부산의 여행알선업, 구매대행업 등 서비스업 법인 신설은 지난해보다 23.2%가 증가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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