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 “화가로서 50년 인생 담은 작품, 진정성 있게 다가갔으면”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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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서양화 전문 화랑 시작
유화·수채화·도자화 등 60여 점 엄선
“화집 본래 기능에 집중, 생명력 담아”

“그림은 비생명적 화면에 화학적인 것을 바르는데, 그게 생명성으로 다가와야 하거든요.”

부산의 원로 화상이 자신의 그림 인생을 한 권의 화집에 담았다. 화상으로 다뤘던 남의 그림이 아닌, 화가로서 그렸던 자기 그림으로 말이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화랑인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대표가 최근 〈SHIN OK JIN 화집 2023〉을 발간했다. 화집에는 유화, 수채화, 선면화, 도자화 등 신 대표가 약 50년간 그린 작품 60여 점이 실렸다.

신 대표는 화랑을 열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다 결핵이 도져 부산에 왔어요. 큰 수술을 하고 나니 ‘제도권에 편입하는 대신 내 뜻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 대표는 서상환 작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 인연으로 부산 1세대 서양화가인 김종식 작가와도 알게 됐다.


“내가 술도 잘 마시고 하니 종종 술자리에 불렀어요. 그러다가 ‘신 군은 신문사로 돌아가지 말고 화랑이나 해보라’고 했어요.” 신 대표는 1975년 부산 중구 광복동 입구 외국 서적 판매 골목에 공간화랑다실을 차렸다. 화랑만 하면 금방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를 팔아서 공간을 유지하며 전시를 열자고 생각했는데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어요.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찻값을 전부 외상으로 하는 거예요. 결국 2년을 못 견디고 문을 닫았죠.”

그는 1년 뒤 서양화 전문 화랑으로 재개업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안에 공간이 생겼고, 그걸 보면서 시장의 흐름이 서양화로 바뀔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신 대표는 부산공간화랑의 성장 발판에는 신용 중심주의가 있었다고 했다. “신용을 지키니 많은 이들이 찾아왔어요. 광안리, 서면을 거쳐 2000년대 초 해운대까지 진출했죠.” 그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를 열었고,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부산청년미술상도 시상했다.

“화상으로 작가의 집이나 작업실에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 그림을 보고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봐요. 특히 화랑으로 먹고 살았으니 나에게 그림은 정말 순수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었던 거죠.” 신 대표는 마음이 가는 대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린 작품들이 600점을 넘었다고 했다. “유화·수채화·동양화적인 것까지 다양한데, 그때마다 계기가 있었어요. 도자화는 신문사 취업 이전 영도 대한도기에 근무할 당시 전혁림 선생의 작업을 보조하면서 배웠죠.”

신옥진 대표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부산공간화랑에서 자신의 50년 그림 인생을 담은 화집 발간 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신옥진 대표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부산공간화랑에서 자신의 50년 그림 인생을 담은 화집 발간 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그는 이번 화집 발간은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고 했다. “회고전을 하면서 도록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내 작업의 에센스를 요약해서 책으로 내자고 생각했죠. 모두 내 힘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평론가의 글도 안 받았어요. 대신 이우환 작가가 파리 전시 도록에 챕터가 바뀔 때마다 사진을 넣어둔 것을 참고했어요.”

신 대표는 화집 표지를 ‘소프트 커버’로 한 것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보기 좋으라고 하드 커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너무 불편해요. 이게 모두 화랑을 운영하며 엄청나게 많은 도록을 만들어 본 경험에서 나오는 거죠.” 작품 ‘예수의 초상’(1975)으로 시작해 ‘부처의 사유’(2023)로 끝나는 화집은 총 1000부를 발행했다.

“따로 판매할 것도 아니니 화집 본래의 기능에 집중하는 절호의 찬스였어요. 그림은 생명력이 중요해요. 이번에 화집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전시 중에서 생명력이 있었던 것이 몇 퍼센트나 될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나의 그림 인생을 정리한 화집 속 작품에 담긴 진정성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요.”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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