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치유와 힐링의 산청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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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삼장면 상내원리. 지리산 천왕봉 동남쪽 5km 남짓 떨어진 곳. 1963년 11월 12일 새벽어둠 속에서 몇 발의 총성이 산중 대기를 찢었다. 지리산에 남은 마지막 빨치산 2명 중 이홍이가 사살되고 정순덕이 총상을 입고 생포된 순간이다. 이들에게 붙은 이름은 ‘망실공비(亡失共匪)’. 토벌 중에 사망이 확인되지도 않고, 행방도 알 수 없어 막연히 산에 있으리라 추정되는 공비를 말한다.

지리산은 정전협정 체결 뒤 2년이 흘렀어도 여전한 전투 지역이었다. 입산 통제가 풀리면서 비로소 전란의 허울에서 벗어난 게 1955년 4월 1일. 당시에도 59명의 빨치산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남쪽 체제에 저항했으나 북한 권력자들로부터도 버림받은 비운의 존재들. 산청 출신의 정순덕은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지리산에 들어간 뒤 한국전쟁 끝나고도 무려 10년 이상 은거했다. 순박한 산골 소녀가 한국 역사상 최장기 빨치산 투쟁을 해야 했던 이 땅의 비극적 역사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지리산의 많은 부분은 경상남도다. 산청과 함양의 경계에 꽃봉산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주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산청에는 그 명칭(山淸)처럼 맑고 푸른 산이 유난하다. 산청읍은 지리산 줄기로 둘러싸인 아담하고도 정감 넘치는 고을이다. 마을 옆으로 경호강이 굽이친다. 무수한 상처들이 청정 자연 품에 안겨 능히 치유받을 만한 아름다운 풍광이다.

산청은 지금 전국 제일가는 한방 약초의 고장이다. 깨끗한 자연에 자생하는 1000여 종의 약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한다. 산청군은 왕산과 필봉산 기슭에 한방 테마파크를 조성해 동의보감촌을 운영 중이다. 이 일대에서 매년 한방 약초 축제가 열린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명의가 되기 전 산청에서 유의태라는 스승을 만났다는 얘기가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꾸며진 것으로 보면 되겠다.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가 10년 만에 다시 열린다는 소식이다.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해 2013년 처음 열었던 산청엑스포 행사 10주년을 기리고 한의약 중심지로 자리 잡은 산청을 제대로 알린다는 취지다. 장소는 동의보감촌 일원, 기간은 9월 15일부터 35일간이다. 아픔의 역사를 안으로 삭여 인류의 건강과 행복의 비전을 밝히는 산청의 푸른 변신이 환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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