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계 1위의 가볍지 않은 무게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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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삼성, 경영·사회적 역할서 재계 ‘향도’
전경련 재가입 시 삼성이 먼저 총대 메
국가적 재난·중대사마다 역할 기대
현 정부 규제 완화·세제 지원…희망적

“삼성이 하면 기준이 된다.”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이다. 고졸·여성 사원 차별 철폐 등 기업 경영은 물론이고 사원 복지와 사회공헌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서도 삼성에서 시작돼 다른 대기업으로 퍼져나간 사례들이 많다. 삼성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돌려 말하면 삼성이 주도적으로 했다가 검찰이나 정부의 매를 먼저 맞는 일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다. 삼성은 이를 계기로 SK, 현대차, LG 등과 함께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탈퇴했고,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은 적극 가담했다며 구속까지 됐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더 이상 개인적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현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 전경련 부활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전경련 후속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가입해야 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삼성으로선 두 번 다시 전경련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다시 총대를 멨고, 다른 그룹사들이 뒤를 따르는 모양새가 됐다.

그나마 전경련과 삼성 실무진 간에 명분과 실리를 잘 정리하는 바람에 ‘선언’까지 했던 이재용 회장으로서도 부담은 던 상황이다. 실질적으로는 전경련에 재가입한 것이지만 그 과정은 기존 계열사들이 가입돼 있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의 자동승계 형식을 띤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 해마다 반복되는 태풍·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등 국가적 재난이나 국내외 대형 사건 발생 시 성금 액수도 삼성이 가장 많다. 올해 삼성전자는 역대급 적자를 내고 있지만 기부·성금액은 타 그룹과 비교 불가다.

과도한 액수로 논란이 되고 있는 총수들의 연봉도 삼성은 다른 대기업들과 다른 모습이다. 재계 총수들이 매년 계열사들로부터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연봉을 챙겨가고 있지만 이재용 회장은 6년째 ‘무보수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데 대한 책임 경영의 일환이라지만 각종 비위에 연루됐던 다른 총수들은 복귀 후에도 그렇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등 국가적 사업에서도 정부는 “삼성이 꼭 나서줘야…”라며 손을 내밀었다. 실제 삼수의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동계올림픽은 고 이건희 회장의 활약이 없었으면 유치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대통령 단임제’도 재계 1위 삼성에겐 부담이다. 새로 집권하는 대통령마다 5년 안에 자신의 대선공약을 임기 내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기업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의 고용 창출과 투자 요구에서 가장 큰 부분은 언제나 삼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에서 보듯 정부와 기업 간 유착, 그로 인한 비리들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삼성은 피해갈 수 없었고, 총수는 검찰에 불려 다녀야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한 것은 수십 년간 기업인으로 있으면서 정치권과 행정부, 지자체에 겪은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와 세금은 갈수록 강해지거나 높아지면서 지원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기업들은 정치권과 달리 세계 일류를 지향하고 그 성과물로 분야별 글로벌 1위의 성과를 내는 곳이 많다. 전자,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서 수십 년간 첨단 기술 개발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고, 한국을 당당하게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삼성은 세계 1위인 반도체·스마트폰 부문의 성과로 인해 2010년대부터 국내 순위보다는 글로벌 10위권 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인터브랜드 기준 브랜드 가치도 세계 5위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처럼 아직도 4류다. 국회는 18대, 19대, 20대, 21대로 숫자는 올라가지만 매번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현 21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여야 정쟁으로 인한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각종 민생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했고, 국민들에게 혼란만 초래하는 입법 등으로 비난을 샀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가 일류로 올라서 재계에 화답할 때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각종 세제 지원안을 내놓고 있어 그나마 희망적이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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