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멍든 청년 삶 ‘회복 불능 상태’
166억 전세사기 일당 첫 공판
피해자들 호소 발언 이어져
대책위 “엄중 처벌” 기자회견
피해자 210명에게 166억 원 상당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집주인(부산일보 4월 28일 자 5면 등 보도)이 법정에 섰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청년층으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결혼·이직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모(53) 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 공소 사실에 따르면 최 씨는 무자본·갭투자 방식으로 빌라를 매입해 왔다. 이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담보 채무 현황과 실제 임대차 현황 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임대차 보증금 반환은 문제없다는 취지로 피해자들을 속여왔다. 이런 수법으로 최 씨는 지난 2020년 1월 18일부터 2023년 1월 12일까지 피해자 210명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만기가 지나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총 166억 3200만 원의 재산 피해를 입혔다.
법정에선 배상명령을 신청한 피해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피해자 대부분이 청년층이라 전세자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삶 자체가 망가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다. 최 씨가 소유한 수영구 수영동 오피스텔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A 씨는 “상견례 하루 전날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파혼에 이르렀다”며 “이후 스트레스로 백내장에 걸리는 등 삶이 완전히 회복 불가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재판에 앞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22일 오전 10시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최 씨에게 돈을 떼인 세입자가 이보다 더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 씨와 그의 친척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은 263명에 달한다. 피해 금액은 206억 2500만 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추가로 최 씨에 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최 씨가 반성의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부민동 오피스텔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B 씨는 “최 씨와 그는 구속된 직후 자신의 건물에 자필로 호소문을 써서 붙여 고소 취하를 원하는 분은 먼저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형량을 줄일 생각만 하는 최 씨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이동균 변호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부분은 피의자의 범죄수익을 박탈하고 자산을 동결하여 범죄수익의 소비와 은닉을 막는 것”이라며 “피해 회복이 곤란한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부패재산몰수법상의 ‘특정사기범죄’의 유형에 ‘전세사기’를 추가해 발의된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