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우리 동네 가게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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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에디터

그림책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의 한 장면. 논장 제공 그림책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의 한 장면. 논장 제공

묵묵히 동네를 지켜온 가게들이 있습니다. 한주리 작가의 <만리동 이발소>(소동)는 1927년 문을 연 서울 성우이용원을 기록한 그림책입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담긴 가게 안, 물건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따뜻한 햇살과 어우러진 비누 냄새가 떠돕니다. 손님들은 따로 안내를 받지 않아도 알아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이발이 끝나갈 때 전분가루를 살짝 뿌려 들쑥날쑥한 머리카락을 찾아내고, 머리를 마지막으로 헹구기 전에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만리동 이발소’ 이발사가 몇십 년에 걸쳐 만든 규칙이랍니다. 안전상의 문제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림책에 등장하는 가게의 예전 모습은 사라졌지만, 성우이용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 뒤에 빼곡하게 그려진 수많은 손님의 얼굴을 보면서 한 가게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같이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논장)은 마을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네 가게를 소개합니다. 박현주 작가는 골목식당, 부부정육점, 헤어살롱, 미미슈퍼, 무지개문구, 추억사진관, 꽃집, 맵시옷가게, 문화서점, 삼만리자전거, 명장베이커리 등 다양한 업종의 동네 가게를 불러옵니다. 이들은 서로의 가게에서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좋은 일은 같이 기뻐하고, 힘든 일에 힘을 보태며 든든한 이웃이 되어줍니다. 작가는 ‘우리 동네 가게’에 동네를 찾아오는 과일트럭과 배달누나까지 포함시켜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저녁밥 먹지 말고 골목식당으로 오세요.”(그림) 식당 사장님의 생일 파티에 동네 모든 사장님이 모였습니다. 환하게 불이 켜진 그림책 속 동네 모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추억 속 동네 가게를 떠올려 봅니다. 집 근처 작은 슈퍼에 심부름 가던 기억, 아이스크림 통에서 ‘쮸쮸바’를 꺼내기 위해 발돋움을 했던 일, 시장 빵집에서 나던 따뜻한 빵 냄새, 만화잡지 사러 뛰어갔던 학교 앞 서점, 좋아하는 밥집 사장님과 눈으로 나누는 인사, 단골 가게에서 ‘오늘 좋은 물건’ 추천받기 등 우리가 자라 온 수많은 날에 동네 가게가 함께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동네 가게에서 새로운 기억을 쌓게 될까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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