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황제 4명 통해 본 여말선초 80년 외교 이면사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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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말과 글/정동훈

<황제의 말과 글>. 푸른역사 제공 <황제의 말과 글>. 푸른역사 제공

<황제의 말과 글>은 여말선초에 해당하는 1368~1449년 80여 년간 명나라 초기 황제 4명의 말과 글을 통해 조-명 외교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고려 공민왕에서 조선 세종에 걸친 시기인데 명의 황제는 홍무제 영락제 선덕제 정통제 4명이다. 홍무제는 만기친람에 노심초사의 대명사였고, 영락제는 영웅병에 자아도취형이었고, 선덕제는 방탕하고 거림낌이 없었으며, 정통제는 무신경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4명의 개인 성격에 따라 양국 관계가 요동쳤다. 이들 4명의 말과 기록 글은 사뭇 달랐다.

홍무제는 이방원이 명에 사신으로 왔을 때 아들 면전에서 아버지 이성계 욕을 했다고 한다. 홍무제 주원장은 의심이 많았는데 31년간 외교 책임자를 27번 갈아치운 인물이다.

영락제가 한 말 중 명나라 사서에 없는 것이 많다. 그것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영락제는 사신에게 “국왕에게 얘기해서 예쁜 여자를 몇 명 골라 데리고 오라”고 했다. 태종 때 이 신하는 서울에 7개월 머물면서 미색을 직접 심사해 5명을 데리고 간다. 영락제는 그중 1명을 총애했다. 그러면서 트집을 잡는다. “작년에 보낸 여자들은 뚱뚱하고, 피부가 안 좋고, 키가 작고, 별로 예쁘지 않다. 왕은 찾아놓은 여자가 있거든 많으면 두 명, 적으면 한 명이라도 다시 보내라.” 조선은 2명을 보냈다고 한다. 영락제에게 이국적 자색을 갖춘 미녀,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똘똘한 심부름꾼 내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과 그걸 조리할 수 있는 요리사를 조선에 대놓고 요구했다.

황제의 구두 메시지를 가지고 온 명 환관들은 위세를 떨었다. 상당한 환대를 받았고, 챙길 것은 챙겨갔다. 조선은 태종 때까지 저자세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세종 때부터 지혜를 발휘하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명 황제도 바뀌면서 조선-명 관계가 점차 안정돼 갔다. 정동훈 지음/푸른역사/268쪽/1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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