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지금 우리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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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후원하다가 종내에는 아예 학교를 설립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등학교가 명문고로 자립 기반을 갖추자 국가에 기증한다. 학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이야기다.

한국 사회 불평등 임계점 넘어

교육의 변화에서 해법 찾아야

공공기능 위한 공간 혁신 필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어른 김장하’를 봤는지 물어보거나 혹은 꼭 보기를 권유한다. 그렇게 만난 ‘어른 김장하’는 꼰대라는 용어에 묻혀버린 ‘어른’이라는 말을 불러내 가슴 뭉클하게 했다. 참으로 어른이 많아졌으면 하는 시대다.

그런데 청년도 노인도 학생도 선생도 불행한 사회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청년은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 노인 빈곤과 노인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세계 1위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현장을 온몸으로 받아온 노인들에게 존엄한 인간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서이초 교사의 자살로 드러난 교권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이런 사회 현상을 보며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박탈감이 개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고 최근 들어서는 타인에 대한 공격과 혐오 범죄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교육이 있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가장 사회적인 수단이 한국의 교육이라고 말한다. 12년 동안의 줄 세우기식 공교육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승자와 패자로 구분해서 승자 독식의 사회를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경쟁 지상주의의 주입식 교육은 학력 계급사회를 만든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과 패자의 열등감은 당연하다.

서울대에 가도 반수를 하는 이유는 ‘의대’를 가기 위함이고, 경제학과, 사회학과 등을 나와도 최종 종착지는 로스쿨로 이어지는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학입시에 킬러 문항 출제 배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능력주의와 경쟁사회가 불러온 불평등을 사회적 문제로 푸는 대신 자신을 죽이고 타인을 응징하는 것으로 치닫는 사회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변화가 절대적이다.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는 “경쟁 교육은 야만”이라고 했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독일은 1970년부터 경쟁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학교를 만들어 놓은 일본도 2014년부터 경쟁 교육을 더 이상 시키지 않고 있다.

교육의 변화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학교 공간의 혁신이다. 교육부의 학교 공간 혁신사업과 맞물려 근래 들어 학교 건축에 있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신설 학교가 대상이다. 기존의 학교도 공간 변화를 꾀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는 학생, 교사, 지역사회 중심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관리자의 관리 편의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학교를 이용하고 머무르는 사람은 학생인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 볼 수 없다. 획일화된 교실은 창의성보다는 전체주의를 양산한다.

노후 학교를 대상으로 리모델링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 사업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학교로 제한되어 있다. 특히 공공 건축물 중 학교에 평균 건축비가 가장 적게 책정된다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지금은 폐교가 늘고 있지만 예전 학교의 대부분은 동네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 잡았다. 마을 공동체의 핵심 공간이었던 셈이다. 영국과 독일 모두, 학교는 지역공동체와 커뮤니티를 맺고 공공시설의 역할을 단단히 한다. 심지어 독일은 지역민이 지나가다 대학 강의에 들어와 듣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이것을 이상하게 보지도 않는다.

학교가 경쟁이 없는 교실, 학생 중심의 다양한 공간, 거기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간이 된다면 학교폭력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변화된 공간은 수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간이 바뀌고 수업 방식이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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