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택시 운전대 잡기 겁납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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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20대, 70대 택시기사 조롱
욕설에 전치 2주 상해까지 입혀
고령 택시기사 폭행 ‘사각지대’
보호 칸막이 등 안전 확보 절실

사진은 부산 동백택시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사진은 부산 동백택시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부산에서 만취 상태의 20대 여성 2명이 70대 여성 택시기사를 조롱하고 폭행까지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고령의 택시기사를 상대로 한 ‘패륜적’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자 택시기사들은 야간 운행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음주 상태로 70대 여성 택시기사 A 씨를 폭행한 혐의로 20대 여성 B 씨를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B 씨는 지난 23일 오전 1시 10분께 친구인 20대 여성 C 씨와 함께 부산진구 서면 일대에서 택시에 탑승했다. 남구 문현동 국제금융센터 4번 출구 앞으로 이동한 B 씨 일행은 A 씨가 택시 요금 7800원을 내라고 하자 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A 씨에게 핸드폰 게임 화면을 보여주며 “여기에 돈이 있다”고 하는 등 조롱 섞인 태도를 보이다 도주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B 씨 일행을 붙잡아 경찰에 신고하자 이들은 욕설을 하며 A 씨를 바닥에 밀쳤다. 이후 넘어진 A 씨 위에 올라타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바닥에 내리쳤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B 씨 일행은 이날 오전 2시께 문현지구대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 씨는 폭행으로 인해 얼굴과 발목에 멍이 드는 등 전치 2주의 상해를 입고 현재 입원 중이다. A 씨는 “40년 넘게 택시기사로 일하며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손녀뻘의 취객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술에 취한 젊은 승객이 고령의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동구 초량동 인근에서 30대 남성이 70대 남성 택시기사를 폭행한 후 다른 70대 남성 택시기사의 차를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6월엔 남구 용호동 인근에서 해군작전사령부 소속 부사관인 20대 남성이 60대 남성 택시기사를 폭행해 군검찰로 송치되기도 했다. 부사관은 차에서 내린 택시기사를 라이터로 위협하다 상의를 벗고 발로 차며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기사들은 취객이 휘두르는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음을 호소한다. 4년째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여두진(37) 씨는 “지난해 4월 운행 중 취객에게 갑자기 목덜미를 가격당했으나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젊은 편에 속하는 나조차 취객을 상대할 땐 겁이 나는데, 하물며 고령 기사들의 경우엔 난동을 피우는 젊은이들에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택시기사들을 위해서 안전한 근무환경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택시 안이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택시기사의 업무 특성상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김학교 부산지역분회장은 “최근 택시기사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야간 운행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며 “택시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택시에 보호 칸막이가 설치될 수 있도록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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