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율 안 된 ‘의경 재도입’ 해프닝 그치나
한 총리 첫 검토 후 경찰청장도 호응
하루 뒤에 총리실 ‘속도 조절’ 변화
공론화 전 국방부 등 기관 협의 미비
정부가 흉악범죄 대응책의 하나로 내놓은 ‘의무경찰(의경)제 재도입’ 논의가 여권 내 의견조율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불쑥 제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경 재도입 검토 입장을 처음 밝힌 것은 한덕수 국무총리이다. 한 총리는 지난 23일 ‘이상동기 범죄’ 대응 방안과 관련해 발표한 담화문에서 “범죄 예방 역량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의경 재도입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의무경찰은 기존 병력자원의 범위 내에서 인력의 배분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이날 배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신속대응팀 경력 3500명, 주요 대도시 거점에 배치될 4000명 등 7500∼8000명 정도를 순차로 채용해 운용하는 방안을 국방부 등과 협의할 것”이라며 “7∼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찰 수장이 의무경찰 도입 규모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총리실은 다음 날 설명자료를 통해 “현재의 경찰 인력 배치를 대폭 조정해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경찰의 최우선 업무인 치안 활동에 주력할 것”이라며 “(의경 재도입은)이러한 조치에도 추가적인 보강이 필요하다면 폐지된 제도의 재도입도 검토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의경 재도입 검토가 ‘즉각 부활’로 받아들여지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일부 언론에 윤석열 대통령이 ‘의경 재도입 백지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총리실이 이 사안을 공론화하기에 앞서 정무적 고려나 기관 간 협의가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군 병력 자원 부족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불과 7∼8개월 안에 의경 8000명을 충원하는 방안은 무리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보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의경 재도입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 없다. 쉽게 동의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해 정부 내 사전 협의가 부족했음을 시사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