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 힘든 시대…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그리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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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시조집 ‘유모차와 해바라기’
우크라이나 난민, 다문화가정 등
인류와 이웃에 대한 따듯한 시선

정현숙 시조시인. 정현숙 제공 정현숙 시조시인. 정현숙 제공

‘선 하나 그어 놓은 국경 마을 프셰미실/밀폐된 기차역에 어둠 뚫은 기적소리/그곳엔 희망을 찾아온 난민들이 살고 있다//눈이 큰 해바라기 그 꽃 닮은 사람 웃음/총 든 자 가슴마다 서늘하게 꽂혔으리/유모차 단잠 든 아기 나비 꿈은 꾸었을까//한 끼니 빵과 물로 하루를 건너는 고통/눈물은 기도 되어 평원을 적시지만/가을도 이슥해 가는데 지구촌은 대답 없다’(‘유모차와 해바라기’ 전문).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극의 현장을 뉴스로 접한 정현숙 시인은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며 시조로 길어 올렸다. 그의 다섯 번째 시조집 <유모차와 해바라기>(목언예원)의 표제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남동부 도시 프셰미실에 모여든 난민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처럼 큰 눈을 지닌 난민과 유모차를 탄 아기의 모습이 애처롭다. 인간을 처참하게 만드는 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인류의 재앙인 전쟁을 중단시키지 못하는 지구촌의 무력한 현실을 토로한다.

정 시인의 시조집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배어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애환을 보여주는 ‘비닐하우스 가정’이 그러하다. 힘들게 살지만 그들이 서로 기대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름을 전한다. ‘지폐를 세어가듯 들깻잎 단 묶으며/얼마를 따 쟁여야 고향 다녀 올 수 있지/머리 위 뜨는 비행기 올려보는 월남댁//늘그막 색시 얻은 햇님농장 주인 박씨/한시도 입가 웃음 떠나지 않는 일터/서로가 등을 기대며 꾸려가는 생이다’(‘비닐하우스 가정’ 중).

시인은 아파트 층간 소음을 즐거운 셈법으로 치환해 듣기도 한다. 윗집에 사는 어린이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위층의 외동이가 동글동글 뛰는 소리/물방울 번지듯이 포물선 그리듯이/귀 쫑긋, 천장의 발자국 세어보다 졸다가’(‘즐거운 셈법’ 전문).

시인은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작은 위로를 전하며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한편 시인은 한글에 대한 각별한 사랑도 펼쳐 보인다. 스마트폰 일상화로 한글의 축약과 압축이 심화된 현실을 꼬집는다. ‘고농축 압축 파일 XYZ 풀어보면/그 속에 은거하는 희망절벽 혼밥 혼족/절반은 씹어서 뱉는 까톡문자 헉ㅠㅠ//오나가나 폰 화면에 눈을 둔 사람들은/도태를 벗어나려 춤을 추는 엄지족/해마다 한글날이면 세종대왕 뵐 낯없다’(‘신조어 시대’ 중).

시인은 1990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과 1991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성파시조문학상, 부산문학상 본상 등을 받았다. 교직에 있을 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동시조를 가르쳤으며 동시조집 3권도 낸 바 있다.


정현숙 시조집 <유모차와 해바라기> 표지. 목언예원 제공 정현숙 시조집 <유모차와 해바라기> 표지. 목언예원 제공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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