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백선엽은 이해해도 홍범도는 안 된다?
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정율성, 홍범도 논란 여권발 ‘역사 논쟁’ 점화
북한군 ‘응원대장’ 과도한 ‘추앙’ 재검토 마땅
반면 홍범도 흉상 이전 배경은 ‘이중잣대’
갈등 소지 높은 역사 논쟁 실패한 과거 살펴야
정율성이라는 인물을 잘 몰랐다. 문제가 된 공원 이전에 음악제, 학술대회, 생가·고향집, 거리, 음악제·동요제 등 광주에서 20년 가까이 ‘기념 열풍’이 불고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그 ‘기원’을 찾아봤다. 2002년 중국에서 그의 일대기를 조명한 영화가 나오고, 2년 뒤 광주 남구청이 학술대회를 개최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중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광주를 찾아 정율성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생가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이 늘어났다는 기사가 검색됐다.
기념 열기는 더 뜨거워졌고 광주 남구와 전남 화순군이 ‘우리 고장 사람’이라고 다투는 일도 벌어진다. 정율성은 20년간 광주에서 가장 빛나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정율성이 ‘추앙’받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광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중국의 3대 작곡가라는 평가만으로 “안중근, 윤봉길도 못 받는 호사”를 누린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음악가로서 그의 업적 때문에 수많은 중국 관광객이 온다”고 한 강기정 광주시장도 사실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당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진보정권 아래 중국에 우호적인 기류가 조성됐고, 지자체들의 관광 활성화 논리가 더해져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맹목적인 기념 경쟁이 일어난 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6·25 때 북한군 ‘응원대장’으로 서울까지 내려와 전투를 독려했다는 사실을 광주시민들이 알고도 각종 기념사업에 동의했을까? 최근 광주 분위기를 보니 그 또한 아니었던 것 같다. 이쯤 되면 광주시는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라 중단하기 어렵다”고 할 게 아니라 여론을 다시 수렴해 사업 재정비에 나서는 게 옳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천명한 뒤 역사 논쟁에 불을 댕긴 듯한 여권이 정율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적절한 ‘타깃팅’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의 나쁜 습속 중 하나는 뭔가 유리하다 싶으면 ‘적정선’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승만 기념관, 백선엽 재평가에 이어 정율성까지 상식선 안쪽에서 움직이는 듯하던 여권발 ‘역사 바로세우기’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걸고 넘어지면서 균형감을 잃은 느낌이다. 철거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이라는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것이라는 설명도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이 이전 배경이라는 군의 설명으로 설득력이 없어졌다. 100년 전 타국에서 외롭게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그의 항일투쟁 공적을 가릴 만한 이유가 될까. 1943년에 작고한 그는 해방 이후 혼란상은 물론 6·25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백선엽의 간도특설대 복무에 대해서는 나라 잃은 청년의 선택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느냐던 여권이 청년 홍범도의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이중잣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100% 객관적인 역사는 있을 수 없고 현재의 시각을 통해 끊임 없이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지배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항상 역사에 개입하려는 욕구를 느낀다. 정권 교체 이후 어김 없이 역사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다.
그러나 권력이 섣부르게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항상 반작용을 불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그랬고, 6·25 때 공로로 김일성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묘사한 문재인 정부의 서훈 시도 역시 논란 끝에 좌절됐다. 우리의 경우, 근현대사의 굴곡이 컸고, 이해 당사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점에서 역사 논쟁은 그 어느 나라보다 민감한 소재다.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해도 국민 공감대를 모으면서 지극히 조심스럽게 끌어가지 않는 이상 ‘역사 전쟁’으로 비화돼 국론 분열만 더할 뿐이다.
서민들에게 이런 논쟁은 한가롭기만 한 ‘그들만의 권력 싸움’에 불과하다. 얼마 전 노동자 출신의 무명가수가 부른 노래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서민 생활의 고달픔을 외면한 채 자기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가사가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지만, 공화당은 “민주당이 세금을 마구 걷어서 복지에 쓰고 있는 걸 비판한 것”이라고, 민주당은 “노동조합을 강화해야 이런 불만을 풀 수 있다”며 상대를 향한 비판의 도구로 삼았다.
정작 당사자는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며 논쟁에 당혹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정치가 서민과 유리돼 그들만의 게임에 빠져있는 건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지금 한국 정치권이 부딪치는 문제가 50년, 100년 뒤에도 의미를 가질까? 여권에서도 비판이 거센 홍범도 흉상 이전은 이쯤에서 재고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난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