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당 이회영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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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의 10대조(祖)가 백사 이항복이다. 백사 뒤로 정승 열을 배출했으니 최고 명문가로 꼽을 만하다. 이회영은 여섯 형제 중 넷째였다. 그의 설득으로 경술국치를 맞아 형제들 모두 만주로 망명을 결심한다. 전 재산을 헐값에 급매했더니 지금 시세로 6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이 돈을 독립군의 산실이 된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운동에 모두 쏟아부었다. 덕분에 김경천·지청천·이범석 등 쟁쟁한 교관들이 수천 명의 독립군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었다. 신흥무관학교가 없었으면 김좌진·홍범도 장군 등이 이끈 청산리 전투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집안 식구들은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이회영도 다롄으로 이동하다 밀정에게 걸린 뒤 다롄 수상경찰서에서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아 순국한다. 이처럼 형제 다섯 명이 옥사하거나 굶어 죽고 말았다. 바로 아래 동생 이시영만이 살아 남아 정부 수립 후 초대 부통령이 된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너무나 희생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조용헌은 〈조용헌의 명문가〉에서 “최고 명문가이자 어마어마한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모두 바쳤던, 이회영 가문에 대해서 한국은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의 집중을 피하고, 분권적 지방자치단체의 연합으로서 중앙정치 기구를 구성하며, 일체의 재산은 사회적 자유 평등의 원리에 모순이 없도록 민주적인 관리 운영의 합리화를 꾀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물론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회영이 김좌진 장군의 친척 동생인 김종진이 찾아왔을 때 나눴다는 이 이야기는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회영은 비록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결코 공산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다.

육군사관학교가 육사에 세워진 독립 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해 이전하겠다고 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육사는 이전부터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의 계승 문제에 대해 이상하게도 소극적이었다. 이번 논란은 이들 독립 영웅의 흉상이 문재인 정부 때 세워졌기에 뒤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자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만 철거하면 눈치가 보이니까 나머지 네 분도 함께 옮기기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독립 영웅들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육사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흑역사를 장식했다. 지금 군이 이럴 때인가.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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