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한여름 고집 한산대첩축제 '역사'보다 '생존'이 먼저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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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사회부 차장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바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다. 한국갤럽 5년 주기 설문조사에서 2014년과 2019년 연거푸 이순신이 첫손에 꼽혔다.

존재만으로 애국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구국 영웅. 발자취가 닿기만 해도 너나없이 장군 관련 사업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중에도 둘째라면 서러운 곳이 경남 통영이다. 통영은 조선 수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해군본부다. 통영이란 지명 역시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1대, 3대 통제사를 지낸 이순신은 1593년(선조 26년) 초대 통제사로 임명되자 한산도에 최초의 통제영을 설치했다. 꼬박 1년 전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군과 치른 전투가 결정적이었다. 절대 열세였던 병력, 부족한 물자에도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정예군으로 평가받던 일본 수군을 괴멸시킨 역대급 해전.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한산대첩이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연전연패하며 수세에 몰렸던 조선은 이를 계기로 해상 주도권을 가져오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해외에선 조선의 ‘살라미스 해전’으로 불리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 해전 중 하나로 평가한다.

때문에 통영에선 매년 이맘때 한산해전 승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연다. 이순신 테마 축제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한산대첩축제’다. 올해도 지난 4일 62번째 축제가 개막해 9일간의 여정을 끝내고 12일 폐막했다.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고유제와 군점으로 시작해 한산해전 재현으로 정점을 찍고 시민대동한마당으로 매조지는 마무리까지, 특별하진 않아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문제는 시기다. 하필 폭염이 절정일 때라 축제를 제대로 즐기는 게 쉽지 않았다. 주최 측도 이를 의식해 주요 프로그램은 대부분 해가 진 이후에 배치했다. 하지만 불볕더위에 달아오른 열기를 삭히기엔 역부족. 축제를 여는 쪽이나 참가하는 쪽 모두에게 고역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애초 한산대첩축제는 여름 이벤트가 아니었다. 1회(1962년)부터 3회까진 4~5월에, 4~38회는 9~10월에 열렸다. 8월로 옮긴 건 2000년 39회부터다. 한산대첩이 실제로 일어났던 날(음력 7월 8일)에 맞춰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리자는 의도였다. 휴가철이라 관객 동원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점도 반영됐다.

그러나 ‘올해가 당신이 경험하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경고가 나올 만큼 폭염의 기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올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통영시도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2006년 축제 개최 시기 변경을 놓고 시민 설문조사를 했다. 당시 응답자의 70%가 9~10월로 옮기자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통영시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달 27일 유엔본부에서 EU 기후변화 감시 기구의 발표 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밝힌 경고다. 한산대첩축제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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