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투자 유치 나선 르노 부산공장, 배터리에 ‘발목’
1조 원 투입 연 20만 대 생산 계획
배터리 확보 못 해 투자 유치 난항
국내 생산 물량 대부분 수출 영향
공장 가동률 50% 안팎 고용 불안
상공계 “예견된 문제 특단 대책을”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이 전기차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복병’을 만났다. 차량에 탑재할 국내산 배터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유치 계획에 난항을 겪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3사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와중에 정작 국내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물량 확보에 애를 먹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2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르노코리아는 최근 프랑스 본사와 함께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부산공장을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병행 생산기지로 전환할 계획을 세웠다. 가동이 중단된 생산 라인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물량을 받아와 연간 전기차 2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이 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선택한 건 현재 공장 가동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XM3를 끝으로 국내 신차 발매가 중단된 르노코리아는 국내 영업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수출 실적도 월 1만 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부산공장의 가동률은 50% 안팎을 맴도는 중이다.
르노코리아는 2025년 출시를 목표로 신형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 계획인 ‘오로라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2026년부터 해외 완성차 업체로부터 전기차 물량까지 가져오면 부산공장이 전성기 때의 가동률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앞서 부산공장은 2014년 닛산 자동차로부터 로그의 위탁 생산 계약을 따내 5년 가까이 큰 재미를 봐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국내산 배터리 확보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르노코리아의 전기차 투자 유치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르노코리아엔 악재다. 국내 생산 배터리 물량은 대부분 수출이 되는 데다 남은 물량 역시 배터리 3사와 공동 해외투자를 진행한 현대차·기아 등의 몫이다. 르노코리아로서는 전기차 물량을 주겠다는 파트너사도 있고, 생산인력과 생산공장까지 갖춘 마당에 배터리를 못 구해 투자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르노그룹과 르노코리아는 올해 총리실에 국내 배터리 설비 증설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적자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 지원이 담보된 해외에서 공장 증설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자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적용하는 한편 해외 배터리 업체의 공장 건립에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며 ‘당근과 채찍’을 꺼내들었다. 국내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추가 물량을 위해 굳이 국내에 공장을 증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배터리를 수급하는 방안도 있지만 가능성은 작다. 부산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을 원하는 해외 파트너사마다 질 좋은 한국산 배터리를 원하고 있고, 중국산 배터리를 쓸 경우 북미 시장 등에서 수출 경쟁력 하락 우려도 있다.
최근의 답답한 상황에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내에선 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부산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이후 근무일수도 계속 줄고 있다. 부산공상 직원들의 평상시 월 근무일수는 20~22일이었지만, 이달 생산판매계획 상 근무일수는 11일에 그칠 예정이다. 휴무만 8일이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노조 측은 “근무일수가 줄면서 조합원과 협력사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노사 간에 고용안정위원회를 열고 머리를 맞대고는 있지만 결국은 전기차 투자 유치와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 등 가시적인 해법이 나와야 임금협상도 잘 마무리되고 부산 경제에 활력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에 도움을 호소했다.
부산의 상공계에서도 국내 배터리 연산능력이 정해져 있어 이는 예견된 문제라며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부산상공회의소 측은 “정부에서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국가산단 조성용역 등을 통해 지방 산단 수요를 파악하고 있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부산시도 부산의 자동차 제조 업계와 일자리를 지켜낸다는 각오로 이차전지 배터리 생산시설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