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빛바랜 ‘치안 한국’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 안전 명성
최근 잇따른 흉악 사건으로 흔들
현장 순찰인력 대폭 강화 여론 비등
정부, 어설픈 의경 재도입 논란만
당장은 경찰 내부 보충이 현실적
국민 불안 ‘치안 구멍’, 더는 안 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첫손에 꼽는 것이 ‘치안’이다. 개발도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미국 출신들도 대한민국의 치안에 대해선 기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실제로 치안 상태가 평균 이상이라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성인이 한밤중에 대도시 골목을 혼자 활보하는 일은 삼갈 때가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처럼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한밤중에 별다른 거리낌 없이 도심을 거닐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는 말도 덧붙인다. 한국 사람으로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우쭐해진다.
사실 우리나라의 치안 상태는 세계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직접 한 번 한국을 방문해 체험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 됐다. 안정된 치안이 관광 상품의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이처럼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안정된 치안이 요즘 빛이 바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상동기 범죄, 일명 ‘묻지 마 범죄’가 등산로, 지하철역,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치안 불안감이 매우 높아졌다. 한밤중 외출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국민들이 이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용품을 구매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고 하니,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치안 불안을 개탄하는 소리가 잇따르면서 경찰 책임론과 함께 치안 강화 여론이 들끓은 것은 예견된 일이다. 정부는 서둘러 대도시 중심가에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흉악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국민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일회성의 보여 주기식 대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결국은 일상에서 사각지대 없는 생활치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정석은 주택가나 유동인구 밀집 지역 등 현장 순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다. 대도시 중심가에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는 일은 폼 나긴 하지만, 오래 할 수는 없다. 또 범죄 예방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답은 뻔한데, 문제는 현장 인력이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경찰은 여기서 또 국민에게 실망감과 함께 한숨만 나오게 했다. 경찰의 현장 인력 부족을 의무경찰 재도입으로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제시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바로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유야무야됐다.
현역병 복무 인력의 부족 때문에 얼마 전 폐지한 의경 제도를 재도입한다고 하면서 핵심 관련 부처인 국방부와는 숙의조차 없었다고 하니, 애초부터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 정부의 정책 난맥상만 드러낸 꼴이 됐다. 정부가 이런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활개 치는 묻지 마 범죄로부터 과연 국민의 생활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만 더 커지게 했다.
시급한 현장 인력 보충은 지금으로선 우선 경찰 내부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 총리의 담화문 발표에 배석했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일련의 범죄나 테러 또는 사회적인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대략 7500~8000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경찰 내부에서 이 정도의 인력을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윤 청장의 말을 들어 보면 언뜻 수긍이 가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찰의 내부 인력 운용에 비효율성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윤 청장은 “‘14만 경찰’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길거리에서 (치안) 활동을 할 수 있는 인력은 3분의 1 수준인 3만 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11만 명의 경찰은 현장에서 치안 활동을 할 수 없는 인력이라는 얘기인데, 현장에서 활동할 수 없는 경찰이라면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법기관인 경찰 인력의 약 80%가 일상적인 치안과 동떨어진 업무를 하고 있다면 이는 경찰의 인력 구조와 운용에 매우 심각한 비효율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윤 청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그동안 경찰의 인적 관리 실패가 기형적인 조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경사 이하 하위직과 경위 이상 간부의 인력 비대칭 구조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경찰 내부부터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현장 인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먼저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국민의 든든한 보호막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치안 한국의 기둥은 누가 뭐래도 경찰이고, 경찰의 현장 활동이 살아나야 그 명성도 유지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