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다음엔 흑사병?
감염병 주기설이란 게 있다. ‘100년 주기설’이 그 하나다. 1720년께 마르세유 흑사병, 1820년께 인도 콜레라, 1920년께 스페인 독감 대유행을 근거로 든다. 마르세유 흑사병 때는 10만, 인도 콜레라로는 수십 만, 스페인 독감 때는 무려 250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근년에 강력히 제기된 건 ‘6년 주기설’이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6년을 주기로 세계적인 감염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풍문이 아니다. 꽤 많은 감염병 전문의들이 각종 언론을 통해 ‘6년 주기설’을 언급했다.
그런데 ‘6년 주기설’은 수정돼야 한다는 말이 요즘 나온다. 감염병 발생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르스 이후 코로나19(2019년 발생)까지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4년 주기설’이 새롭게 대두했는데, 심지어는 2~3년마다 새로운 팬데믹이 덮친다고 경고하는 이도 있다. 다른 이도 아닌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이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5월 “치명적인 감염병이 훨씬 더 잦은 빈도로, 2~3년 안에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뭔가 출현할 조짐이 있으면 이미 그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심상찮은 조짐이 최근 있었다. 중국과 몽골에서 다른 병도 아닌 흑사병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흑사병이라니! 중세 유럽에서 창궐해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낸, 인류에게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를 안긴 최악의 감염병 아닌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병으로 흔히 알고 있는데, 지금 다시 확진자라니!
기실 흑사병은 박멸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등 지구 곳곳에서 간간이 발생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2013~2018년 2886명이 흑사병에 걸려 504명이 숨졌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도 있다. 미미한 숫자라 걱정할 게 못 된다는 시선도 있으나,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감염학계에선 급속한 기후변화와 맞물려 흑사병은 이미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했다고 본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감염병은 더 무서울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경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꼭 흑사병을 염두에 두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류가 예측하지 못한 감염병 등장 가능성을 제기했음은 분명하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도 2070년까지 최소 1만 5000가지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지나치게 공포를 조장한다고? 그래도 어찌하겠나. 조심하고 또 조심할 밖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