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베를린에는 과거사 기념물 1만 2000개가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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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장남주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푸른역사 제공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푸른역사 제공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허망한 되풀이만 계속될 뿐이다. 나라나 도시도 마찬가지다. 개발 미명 속에 기억을 지우는 나라와 도시는 어느 선을 넘어설 수 없다. 헛된 쳇바퀴만 계속 돌 뿐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은 독일과 베를린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역사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끊임없이 되새긴다는 것이다.

독일은 20세기 최악의 전쟁을 두 차례나 저지른 전범국이다. 하지만 저들은 ‘기억 투쟁’을 통해 그 오명을 훤칠하게 넘어서 있다. 헌법 맨 앞장에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새겨놓았다. 인간은 애초에 한계적 존재다. 그 한계의 일깨움, 아픔을 통해서 인간은 새로운 데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베를린에는 독일 과거사와 관련된 공식 등록 기념물만 무려 1만 2000개다. 그것들을 매개로 연중 행사가 열린다. 기억을 통해 어두운 과거사의 의미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1941년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을 싣고 첫 열차가 강제수용소로 출발한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현장은 ‘선명한 기억 장소’가 되고 있다. 침목에 날짜를 새겨놨고 추념 조형물을 세웠고, 아우슈비츠에서 옮겨다 심은 자작나무들이 처연하게 서 있다. 연방하원 의사당 주변을 꽃무덤이 에워싸고 있다. ‘아우슈비츠를 절대 잊지 말라’는 외치는 행사가 연중 개최되면서 베를린의 추모 지형도는 사시사철 희생자들을 기리는 꽃무덤 천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억의 도시는 결국 인간을 기억하는 도시라는 것이다.

9월 1일은 대학살이 자행된 간토대지진 100주년. 동아시아의 기억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장남주 지음/푸른역사/전2권 368, 364쪽/각권 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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