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돌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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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부터 방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아이의 책가방을 이제서야 열어보았다. 애초에 아이는 방학 숙제를 마지막에 몰아서 하겠다는 계획을 내게 발표했었다. 방학 첫날 ‘숙제 미루기’라는 이상한 계획을 세우는 것에 말문이 막히기는 했으나 알아서 하라고 그저 내버려 두었었다. 아이의 가방을 열자 사탕 껍질, 찢어진 색종이 같은 각종 쓰레기들과 함께 방학 숙제가 적혀 있는 안내장, 1학기 생활통지표, 그리고 일기장이 보였다. 한 학기 동안 집에 일기장을 가져온 적이 없어서 일기를 쓰고 있는 줄도 몰랐었기에 내심 궁금증을 갖고 공책을 펼쳤다. 담임 선생님이 지침을 주셨던 건지, 단순히 하루의 일과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따라 생각을 펼쳐나가는 방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두 가지’ ‘화가 날 때 푸는 나만의 방법’ 등 흥미로운 주제에 따라 펼쳐진 아이의 생각을 읽다가 피식거리며 웃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읽게 되었다. 아이는 글을 이미 완성했다가 그 위에 커다란 가위표를 치고 아래쪽에 새 글을 써놓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 쓰는 것 자체를 무척 귀찮아하고, 좀처럼 고쳐 쓰는 법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먼저 썼던 글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내가 만약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그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고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에 친구와 싸운 적이 있는데 화해를 못하고 헤어져서, 그 친구와 싸우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그 아래에 다시 쓴 글은, 정조 임금의 독살설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 궁금해서 그 시대로 돌아가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뒤의 글보다 앞의 글에 아이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꼈고, 왜 그 글에 굳이 가위표를 친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정법의 실현 불가능성 때문에 그 친구와의 일이 더 속상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하고.

사실 나야말로 과거를 계속해서 곱씹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모든 걸 고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몇 년 전 남동생네 가족이 우리 집에 모처럼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동생이 옷을 너무 많이 가져왔길래 겨우 이틀 자고 갈 거면서 장기 숙박할 것처럼 옷을 챙겨왔냐고 놀리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말에 올케가 푸념하듯 덧붙였다. “옷 냄새에 민감해서 조금만 땀 흘려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갈아입는다니까요. 빨래가 너무 많이 나와요.” 그 말에 나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괜히 딴청을 부렸다. 옷을 어떻게 말려야 냄새가 안 나는지 몰랐던 그때. 나는 늘 저녁때가 되어서야 빨래를 했고, 방 안에 대충 널어놓아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구겨진 옷을 동생은 며칠씩 입고 다녔다. 그리고 학교에서 ‘냄새나는 아이’로 놀림을 받았다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힘들어도 아침 일찍 일어나 빨래를 할 것이고 햇살과 바람에 바싹 말라 좋은 냄새가 나는 옷을 동생에게 입힐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벌어진 사건은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파생시킨다. 그 이후 동생의 마음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나는 모르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 늘 슬프고 두렵다.

인간의 무지와 무관심, 이기심이나 잘못된 선택으로 이 세계에 벌어져버린 사건들과 거기서 파생되는 나쁜 결과들을 생각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의 바다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생각하면 가슴에 무거운 추를 단 것만 같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야 할까. 실현 불가능한 슬픈 가정법에는 그저 가위표를 칠 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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