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대학살 ‘모르쇠’ 일 정부에 도쿄신문 “역사 직시해야”
일 간토대지진 100년
조선인 6000명 희생 재조명 활발
무차별 학살 다룬 영화 관심 고조
일 정부 “정부 기록 없다” 변명만
신문 “사실 외면에 역사왜곡 우려”
1일은 일본에서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에서는 신문에 특집기사가 실리고 다양한 전시회가 마련되는 등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간토대지진이 조명되고 있다. 간토대지진 직후 벌어진 무차별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도 이날 일본에서 개봉한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나온 드라마 ‘파친코’가 이를 다뤄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했다.
일본 도쿄신문은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자행된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자국 정부를 향해 “부정적인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31일 기사를 통해 지적했다.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평론을 피하는 모양새였다”며 그의 발언을 비판했다. 전날 마쓰노 장관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도쿄신문은 마쓰노 장관이 ‘조선인 학살’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추가 조사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이어 마쓰노 장관의 이번 발언이 지난 5월 다니 고이치 국가공안위원장이 국회에서 보인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짚었다. 당시 다니 위원장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는 2009년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도쿄신문은 강조했다.
도쿄신문은 마쓰노 장관이 ‘반성’과 ‘교훈’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면서 “사실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는 말이 끊이지 않아 역사왜곡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과 마쓰노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도 공방을 벌였다.
회견에 참석한 도쿄신문 기자는 “정부에 보관된 문서 중에 내무성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를 한다고 기재한 전신문이 있고, 내각부 홈페이지에도 간토대지진 당시 살상의 대상이 된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는 기술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또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없다는 발언의 의미를 모르겠다”며 “조선인 학살이 없었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마쓰노 장관은 “중앙방재회의 아래에 설치된 재해 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가 조사회가 정리한 보고서에서 해당 기술은 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정부의 견해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내무성의 전신문도 알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학살 사실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100주년을 맞은 간토대지진은 일본 수도권이 있는 간토 지방에서 1923년 9월 1일 일어났다. 이로 인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무려 약 10만 5000명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약 1만 8000명)의 5.8배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불을 질렀다’ 같은 유언비어가 유포됐다. 이러한 헛소문으로 6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됐다. 이와 관련해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는 이를 조명하는 기획전 ‘간토대지진 100년-은폐된 조선인 학살’이 열리고 있다.
한편, 일본 신문노동조합연합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신문 보도가 헛소문을 확산시키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생각을 부추겼다”며 “이제야말로 차별을 없애고 재해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보도의 사명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