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수용소 터 복원해 전쟁 참상 후대에 알려야”
관련 자료집 발간 김웅철 향토사학자
“70년 전 중공군 포로 2만 명이 1년 넘게 제주도에 수용된 것은 전쟁사나 외교사에 중대한 사건이다. 제주 섬에서 벌어진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의 갈등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자 이념 갈등이었다.”
역사사진 자료집 ‘강병대(육군 제1훈련소) 그리고 모슬포’를 발간한 김웅철 향토사학자(73)는 반공 포로들이 도열, 이국땅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에 청천백일기를 덮고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담긴 귀중한 사진을 갖고 있다.
김 씨는 “중공군들은 모슬포~사계리 도로 개설과 모슬포성당 기초 공사에 동원됐고, 일부는 아일랜드 출신 설리반 군종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며 “채소를 즐겨 먹으면서 농장대를 조직, 수용소 인근 밭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했다”며 당시 생활상을 소개했다. 이어 “포로들은 ‘자치대’를 조직해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군대식 열병을 했고, 양철 조각으로 만든 피리를 불며 애환을 달랬다”고 밝혔다.
김 씨는 “반공 포로는 모슬포 지역 3곳에, 친공 포로는 현 제주공항 화물청사 인근 1곳에 수용됐다. 수용소 건립으로 민가가 철거되고 토지가 강제 징발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적잖은 피해를 봤다”고 했다.
대정읍 상모리에는 중공군 포로수용소 건물 외벽이 남아 있다. 길이 20m, 높이 2m의 석축 벽에는 창틀 모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김 씨는 “냉전 시대, 제주에 수용된 중공군 포로 70%가 대만행을 선택한 것은 당시 국제사회에 큰 이슈였다. 지금은 수용소 터와 건물이 마늘밭(사유지)에 남아있는데, 70년 넘게 방치돼 안타깝다”며 “수용소 터를 매입하고 복원해 전쟁의 참상과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동철 제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