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사건’ 동거녀도 “학대·살해 공범”…1심 징역 20년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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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여아 7kg 될 정도로 굶기며 방치…끝내 사망
친모엔 성매매 강요로 대금 1억 2450만원 갈취
재판부 “사실상 가을이 돌봐…보호자 지위 인정”
“미라 상태 감금된 아이 외면, 반성하는지 의문”
동거녀 남편에 대해선 징역 3년·집유 4년

가을이(가명)의 생전 모습. 부산일보DB 가을이(가명)의 생전 모습. 부산일보DB

만 4세 여아의 몸무게가 7kg이 될 정도로 학대·방치해 끝내 사망케 하고, 친모에게는 성매매를 강요해 대금을 모두 갈취한 일명 ‘가을이 사건’의 동거녀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동거녀 부부가 가을이 모녀와 사실상의 가족 공동체를 구성했고, 가을이의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했다고 판단해 이례적으로 중형을 내렸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1일 오전 ‘가을이 사건’의 동거녀 부부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아동학대살해, 상습아동학대, 상습아동유기방임, 성매매강요 혐의로 기소된 동거녀 A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성매매 대금으로 갈취한 1억 2450만 원에 대해서는 추징 명령을 내렸다.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남편 B 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 씨는 가을이가 사망한 지난해 12월 14일 친모가 가을이를 폭행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가을이가 거품을 문 채 발작을 일으키는 등 생명이 위중함에도 학대·방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119 신고 등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또 2021년 11월께 가을이가 친모의 폭행에 의해 눈을 다쳐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이를 방치하고, 친모가 아이에게 정상적인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며 폭행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A 씨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친모에게 최대 2410회에 걸쳐 성매매를 강요해 1억 2450만 원의 돈을 챙겼다. 매달 800만~1000만 원가량의 성매매 대금이 고스란히 A 씨 계좌로 입금됐고, A 씨는 이 돈 대부분을 외식·배달 등 생활비로 쓰거나 A 씨 부부의 빚을 갚는데 썼다.

이 사건의 쟁점은 동거녀 부부에게 법률상 보호자의 지위와 의무가 인정되느냐에 있었다. 동거녀 부부는 가을이의 친권자인 친모가 곁에 있었기에 보호자로서의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아동복지법은 친권자 뿐만 아니라 기타의 이유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게 된 사람에게도 법률상 보호자의 지위를 부여한다”며 “동거녀 부부는 2년 넘게 가을이 모녀와 동거했고, 특히 친모가 성매매를 하러 집을 비웠을 때는 전적으로 A 씨가 가을이를 돌봤다”고 밝혔다.

이어 “친모의 성매매 대금을 공동체의 생활비로 사용했고, 친모는 성매매가 끝나면 집청소를 하거나 동거녀의 아이를 등원시키는 등의 집안일을 했다”며 “서로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의식주를 공유하는 관계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2022년 6월 이후 피골이 상접해 거의 ‘미라’ 상태로 집에만 감금돼 있던 가을이는 부검 결과 머리, 목, 가슴 등에 장기간에 걸쳐 발생한 폭행 흔적과 골절상이 남아있었다. 조금의 충격으로도 언제든 사망할 수 있었을 정도”라며 “방 1~2칸에 불과한 집에서 함께 지내던 동거녀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렇지만 사망 사건 당일까지 자신들의 학대·방임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밝혔다.

성매매 가스라이팅에 대해 재판부는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강했던 친모는 동거녀의 행동을 따라하고, 구속된 이후에도 동거녀가 자신을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동거녀가 친모에게 ‘빚을 갚고 생활비를 보태라’고 하며 성매매를 하도록 사실상 강요했다고 판단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건과 같은 부작위에 의한 범행은 이렇게까지 잔혹하지 않은데, (가을이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친모가 있었으니 양육 책임이나 구호 조치가 필요없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진지한 반성을 하는지 의심스럽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계획적이고 확정적으로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남편인 B 씨의 경우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피해 아동을 직접 돌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동거녀 부부에게도 자녀가 있기에 두 사람 모두 중형을 받게 되면 아이의 양육이 걱정스러워진다는 점도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선고 직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재판부가 보호자의 의무를 외면했다는 이유로 친권자가 아닌 이들을 공범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중형까지 선고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매우 뜻깊다”며 “아동학대 범죄에 있어 보호·감독자의 지위를 폭넓게 인정해 준 판결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에도 원동력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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