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1부두 도서관 ‘꼼수 행정’ 뭘 노리나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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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두에 재력가 이름 딴 도서관
부산시 건립 계획… 유산 훼손 논란
지정기탁서엔 ‘1부두’ 아닌 ‘북항’
기부 심의 통과 뒤 결과는 미공개
시장·고위직 측근 ‘밀실 추진’ 의혹
시의회가 독단적 시정 제동 걸어야

부산항 1부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핵심 장소다. 최근 부산시가 이곳에 도서관 건립을 추진해 유산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1부두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항 1부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핵심 장소다. 최근 부산시가 이곳에 도서관 건립을 추진해 유산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1부두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본격 방류에 이어 최근에는 역사 논쟁, 이념 공방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 나라 국정에 어이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는데, 많은 국민이 여기서 ‘독단’과 ‘편견’의 냄새를 맡는다.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다르지 않다. 최근 부산시가 부산항 1부두에 한 재력가의 이름을 단 도서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일파만파다. 1부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핵심 장소다. 부산의 역사성과 한국 근현대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현재 문화재 등록이 추진 중인 곳이다.

여기에 한 재력가가 도서관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그는 올해 4월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발표 기준으로 개인 자산이 국내 50대 부호 중 1위를 차지한 자산가다. 200억 원을 줄 테니 1부두에 건물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달아 달라는 게 기부 조건이다. 사적 장소가 아닌 공적 공간에 이름을 세운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버스정류장 이름 하나, 도로 명칭 하나 정하는 데에도 숱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 그렇게 힘을 모아도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 힘든 것이 공공장소의 명칭이다. 아무리 위대한 공인이라도 그 이름을 공적 장소에 쓸 때는 철저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이름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법. 이게 인류 역사의 오랜 가르침이다.


1부두 내 기부 도서관 건립안은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지자체의 기부금품 접수 여부에 대해서는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가 그 근거다. 그런데 이번 기부 금액 200억 원에 대한 기부심사 결과는 전혀 공개돼 있지 않다. 부산시가 기부자 측과 기부금 약정식을 체결하기로 계획한 시기는 9월 10일께로 알려졌다. 약정식이 바로 코앞인데 기부심사조차 없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절차상의 하자다.

그런데 기부심사위원회는 6월에 열려 이미 가결이 이뤄진 상태라고 한다. 기부심사에 관련된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기부자가 제출한 지정기탁서 양식에는 애초 도서관 위치가 ‘1부두’가 아니라 ‘북항’으로만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심의가 통과됐다면 이는 한참 더 심각한 문제다. 부산시가 이를 숨기고 모두를 속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1부두를 포함한 도서관 건립 후보지 3곳을 추려 기부자 측에 제안한 때가 올해 3월이었고, 기부자 측이 1부두를 최종 낙점한 것은 5월이었다. 만약 기부심사 때 도서관 위치가 ‘1부두’ 아닌 ‘북항’으로 하는 내용으로 가결된 것이라면, 이는 반대 여론을 의식한 ‘꼼수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부산시는 이와 관련된 사실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부산시의회의 역할에도 아쉬운 데가 없지 않다. 기부 도서관이라고 하지만 건물 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건립비용 말고도 이후의 도서관 운영비는 누가 부담하는가. 부산시 조례에 따르면, 시장은 업무협약 체결 때 시의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시의 재정적 부담이 발생할 경우엔 특히 시의회의 사전 의결을 받도록 돼 있다. 기부금 200억 원을 도서관 건립비용으로 본다면 향후 운영비는 부산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전 의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산시의회는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면서 부산시정을 견제하는 기관이다. 적법한 절차 이행 없이 협약 체결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의회를 거치지 않는 시의 독단적 행정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납득하기 힘든 건 부산시의 조급함이다. 애초 부산시·부산항만공사(BPA)·해양수산부가 합의했던 것처럼 ‘1부두 보존’이라는 원칙대로 가는 게 순리다. 한때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북항의 다른 곳에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1부두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으로 삼고 그 일대를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는 2021년 12월 체결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업무협약서’에 다 나와 있다. 부산시가 소유권자인 BPA를 설득한 것도, 소유·관리권을 이양받기로 한 것도 이런 조건에서다.

기부심사 때 제출된 도서관 위치가 1부두가 아닌 북항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도서관이 필요하면 북항의 1부두가 아닌 적당한 곳에 지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유산 훼손 논란이 불거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제 와서 부산시가 약속을 어기는 것은 결국 부산시장과 시정 업무 수장들의 일방적, 독단적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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