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환갑 맞은 한국 라면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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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라면협회(WINA)’라는 단체가 있다. 세계 인스턴트라면 산업의 발전을 위해 1997년 설립됐는데, 라면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라면 총소비량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 450억여 개로 단연 선두였고, 우리나라는 39억여 개로 8위였다.

하지만 1인당 소비량에선 우리나라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 2021년부터 베트남에 이어 연속 2위였지만, 이전인 2013~2020년 8년 동안 연속 1위였다. 지금도 연간 국민 1인당 70개 이상을 소비하는 최고의 라면 애호국이다. 가히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불러도 될 만큼 한국인들의 라면 사랑은 뜨겁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이제는 빠뜨릴 수 없는 라면이 곧 환갑을 맞는다.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라면인 ‘삼양라면’이 처음 세상에 나온 때가 바로 1963년 9월 15일이다. ‘63년생 토끼띠’인 삼양라면이 처음 출시됐을 때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자료를 보면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사람들이 사 먹으려고 긴 줄을 섰던 꿀꿀이죽 5원보다는 비쌌지만, 25원 수준이던 담배나 35원 하던 커피에 비해선 또 상당히 낮은 가격이었다.

일본 기술의 도움으로 출시된 삼양라면은 당시 식량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강력한 혼·분식 장려 정책을 펴던 정부가 도마다 라면과 빵 공장을 하나씩 세우게 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함께 급증했다. 저렴한 가격에다 얼큰한 맛까지 갖춘 라면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밥 대용품으로 확실하게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다.

삼양라면이 한국인의 밥상에 첫선을 보인 지 60년이 흐른 지금, 한국 라면은 한반도를 벗어나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수출되는 글로벌 먹거리의 위상을 갖게 됐다. 남극, 유럽의 알프스 고봉과 같은 오지는 물론 세계의 어느 외진 곳이라도 한국 라면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독한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생겨났지만, 다른 먹을거리가 넘쳐 나는 오늘에도 라면의 존재감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신제품은 매년 쏟아지고, 시장 규모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인에게 라면은 이제 허기진 배만 채우는 안쓰럽고 애틋한 음식이 아니라, 정서적 토양의 한 측면을 이루는 수준까지 온 느낌이다. 라면의 다음 행보는 조리의 간편함, 정서적 편안함을 넘어 건강까지 챙기는 일석삼조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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