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개발 지향 ’도시 체질 바꿔야 세계 도시 될 수 있다
강동진 경성대 교수 ‘구석구석부산’
피란수도, 영도, 동천, 책방골목 등
자료로 지역 자산 한눈에 확인
“제1부두·북항은 유산의 보고”
‘부산의 것’ 무한가치·대안 제시
도시 부산의 가능성, 그 무한한 가치를 열어보이는 책. 부산에 대한 깊은 천착, 열정, 열망, 호소가 깃들어 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쓴 <구석구석부산>(비온후)은 앞선 세대의 연구를 총합하면서 한 발 더 내디뎌 부산 관련서의 새 장을 여는 듯한 책이다.
“수없이 일본을 오가면서, 점차 아시아·미주·유럽을 답사하면서 세계 도시들과 다른 ‘부산의 것’을 알게 됐고, 부산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 취해온 부산의 ‘개발 지향적 도시 체질’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강조와 호소로 이어진다.
광복동과 남포동, 전통시장, 산복도로, 보수동책방골목, 피란수도 부산유산, 부산항, 영도, 수영강, 서면과 동천, 부산시민공원, 305㎞ 바닷길, 낙동강에 이르는 12개 각 이야기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찰, 눈을 열어주는 외국 사례에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부산을 바꿀 대안 제시’까지 완결 구조를 갖췄다. 많은 옛 지도·사진, 위성사진, 상세 변천도, 외국 사진이 부산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가늠케 한다.
그가 보기에 부산은 ‘눈부신 보석’을 내팽개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305㎞ 부산 바닷길은 해수욕장 포구 섬 160여 개가 알알이 달린 ‘진주목걸이’ 같은 곳이며, ‘마주보는 풍경’ ‘파노라마 풍경’ ‘밤 풍경’을 갖춘 세계적 명소다. 특히 산복도로, 바다언덕, 방파제는 근사한 ‘야경 조망점’으로서 ‘누워있는 에펠탑’ 수준이다. “매력적인 부산의 야경 조망점을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미 특정 조망 영역 내의 개발을 제한하는 ‘뷰콘’ 따위로 수변을 자연·역사와 어울리게, 시민들이 만끽하게끔 관리하는 밴쿠버, 시드니, 맨해튼, 가나자와의 예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당장 시행해야 할 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해운대, 광안리, 북항재개발지구에 멋대로 고층 빌딩을 올리는 것이 부산 실정이다.
강 교수는 “부산은 일제강점기 인구 30만에서 해방 후 귀환동포에 의해 40만, 한국전쟁 피란민에 의해 100만 도시로 급성장한 혼종성의 도시”라고 부산을 정의한다. 일제 침략 제1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부산 사람들이 살았던 ‘대혼돈의 용광로’는 전쟁 극복의 ‘피란수도’로 반전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근대역사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개발 지향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출발점이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이다. ‘세계 유일무이의 평화 성지’란 자부심을 열매로 맺어야 하지만, 그 문지방에서 부산은 여전히 우왕좌왕한다. 피란수도 부산유산 잠정목록 중 가장 중요한 ‘제1부두’에 부끄럽게도 최근 부산시는 도서관 건립을 강행하려 했다.
그는 “제1부두와 북항은 유산의 보고”라고 말한다. 심지어 선박 줄을 묶는 제1부두의 7개 계선주는 100살이 되어가는, 한국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단순한 쇳덩어리가 아니라 항구의 역사적 생명체다. 북항의 ‘크레인’과 ‘조명탑’, 1909년 산(産) 한국 최고의 480m 안벽, 70여 년짜리 ‘멍텅구리 블록’ 등이 모두 그렇다. 볼티모어 이너하버,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시드니 달링하버, 함부르크 하펜시티처럼 재래항구의 흔적을 보존한 ‘세계적 본보기의 재생’을 부산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그는 특히 북항 자성대부두와 부산진역CY구역의 ‘사일로(곡물저장창고)’를 크게 주목한다. 부산에서도 남아공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의 예처럼 ‘사일로 재탄생의 위대한 걸작’을 만들자고 수차례 강조한다.
부산 역사의 물줄기 중 동천과 수영강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재건 과정에 희생된 동천을 회복하는 것은 빌바오, 파리, 오사카, 런던의 사례처럼 ‘부산 경제 황금라인’을 되살리는 것이자 서면을 중심으로 한 부산 도심부 변화의 시작점이란다. 악취 나던 ‘도톤보리’의 수질을 정화해 배를 띄우는 오사카처럼 부산도 동천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수영강 경우, 옛 선소(船所) 복원을 겸하면서 영화의전당과 연결하는 보행교를 ‘강 위에 떠 있는 광장’처럼 만들어 ‘부산다움의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강 교수는 제안한다.
그는 “왜 부산인가”라고 묻는다. “광복동 일대 원도심 역사는 1910년 이후 형성된 것이 아니라 350여 년 전 조선시대(초량왜관)에 이미 시작됐다”며 부산에 대한 기존 관점의 변화와 탈각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의 유일무이한 헌책방 집합소, 보스톤·나가사키·마카오 못지않은 세계문명사의 보석 같은 개항장 역사, 대한민국 존재 근거로서의 대하(大河)와 그린 에코 습지 등을 뜨겁게 거론한다. 그것들이 모두, 아니 그 이상이 부산에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우리의 아픔, 숨결 그 켜와 층에 덕지덕지 시간의 먼지가 앉아 유일무이한 부산의 역사가 되었다”며 “지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그것이 ‘부산의 것’ ‘부산의 무한한 가치’로 새로운 미래 상상력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초량왜관 자유무역의 길’ ‘작은 가게들의 부활’ ‘초량왜관역사관’ ‘책방골목과 연계하는 산복서점의 기획’ 등과 함께 ‘짭짤이 토마토가 에코델타시티의 첨단산업이 될 수 있다’ ‘북항 크레인과 조명탑이 항구도시의 랜드마크가 돼야 한다’는 제안을 접하면 어느새 가슴이 벅차다. 그의 책은 부산에 대한 웅변이요, 부산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천명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