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근대의 관문 부산세관, 지역서사의 광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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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부산세관 옛청사 전경.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부산세관 옛청사 전경.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옛날 옛적 주인댁 아씨를 흠모한 머슴이 있었다. 상사병으로 몸져눕자 아씨도 이제껏 숨겨온 속내를 전했다. 좌사우사중언하심(左絲右絲中言下心).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에 냉가슴을 앓다 그만 죽고 말았다. 아뿔싸! 사랑할 ‘연(戀)’의 파자(破字)인 것을. 연애의 이상과 현실은 좀체 합치되기 어렵다. 연애는 감정을 일컫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감정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발현하는 근대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근대는 연애와 낭만적 사랑과 관련한 숱한 메타포를 생산했다.

근대 부산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연애로 떠들썩했다. 인종과 국경, 신분을 초월한 연애, 사회적 통념과 윤리마저 뛰어넘은 사랑의 행각은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제3대 부산해관장 헌트(하문덕, J.H.Hunt)의 딸 리즈 헌트와 양산 출신 개화 청년 권순도의 사랑, 의료 선교사 얼빈(어을빈, C.H.Irvin)과 좌천동 출신 신여성 양유식의 사랑이 자주 회자된다. 특히 리즈 헌트와 해관 정원사의 불륜 소식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권순도가 구치소 수감을 면치 못했음에도 두 사람의 연정은 식을 줄 몰랐다. 결국 헌트 가족은 부산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영화 ‘리즈 헌트’(2009)의 원천이 되었다.

헌트는 1888년부터 10년간 부산해관장으로 일하며 부산항 매립을 주도했다. 지금의 부산데파트 부근 용미산 기슭을 깎아 바다를 메운 해관부지조성사업은 부산항 최초의 매립공사였다. 해관(海關)은 오늘날의 세관이다. 근대 문물이 유입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관세행정기구라고만 할 수 없다. 세관 설치는 곧 근대화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세관은 1883년 문을 열었다. 개항 5년 만의 일이었다. 관세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공간이자 수출입 화물을 둘러싼 이권 다툼과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1911년 건립한 옛 부산세관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했다. 부산항을 상징하던 이 건물은 1979년 부둣길 확장 공사로 헐리고 말았다. 현재 부산본부세관 3층 부산세관박물관에는 부산항의 역사와 풍경이 오롯이 들앉아 있다. 박물관지기 이용득 관장의 해설은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이다. 1983년 부산세관 100주년 기념책자 발간 사업을 계기로 부산항과 끝 모를 연애를 시작했다. 부산의 역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길어 올려 〈부산항 이야기〉(2019)를 펴낸 부산항 사랑꾼이다. 무엇보다 바다의 관점에서 부산의 미래를 상상하는 시각은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과 맞닿는다. 부산본부세관 리모델링 공사로 당분간 박물관이 휴관할 예정이란다. 부산의 과거와 미래를 한껏 품고 있는 이곳에서 그가 새로 들려줄 지역서사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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