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까지 차오른 기후위기, 탄소 중립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로컬이 미래다]
[로컬이 미래다] 이상기후 일상화
폭우·폭염·폭풍 더 잦아지고 독해진 부산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 피해 ‘직격탄’
태풍에 만조 등 겹치면 해안가 침수 우려
부산시, 2030년 온실가스 47% 감축 목표
그린 리모델링·대중교통 등 각론은 부실
연안 개발 규제·신재생에너지 등 대응을
폭염과 폭우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고 있다. 일부 기후학자들은 올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할 정도다. 연중 온화하고 쾌적한 기후를 강점으로 내세우던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올 8월의 폭염 일수(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수)는 총 8일로, 지난 30년 평균(3일)에 비해 2.7배 증가했다.
■2100년 해수면 82cm 상승
전문가들은 인간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고 그에 따라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 극한 기후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건 과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보고서의 총괄주저자로 참여한 부산대 IBS 기후물리연구단 이준이 교수는 “기후변화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응은 지역적 특성과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한다”며 “부산은 특히 해수면 상승과 태풍·폭풍의 강도 증가로 연안 지역 침수 피해가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은 한반도를 둘러싼 해수면이 2100년까지 최대 82cm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난 3월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수준의 탄소 배출 상태가 유지될 경우를 가정한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2050년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25cm 상승하고, 2100년에는 상승 폭이 82cm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해수면 상승에 태풍, 만조와 같은 극한 상황이 겹치면 해운대, 광안리 등 부산의 주요 해안 지역은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해양산업 오픈랩 구축과제 참여기업 뉴레이어(주)에서 개발한 ‘디지털 트윈 공간정보 기반 3D-GIS 시스템’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해수면이 3m 상승할 때 광안리해수욕장의 경우 인근 도로까지 바닷물이 차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KIOST 임학수 책임연구원은 “2003년 9월 태풍 ‘매미’ 상륙 당시 경남 창원시는 만조 때라 해수면이 상승한 상태였는데, 태풍으로 강풍이 불자 5m 높이의 해일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기후변화에 태풍, 만조 등 변수를 감안하면 부산의 해수면이 일시적으로 3~5m까지 상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60%는 건물·수송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해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부산시 기후변화 대응 계획’을 수립한 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7%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보다 7%포인트 높은 감축 목표를 제시한 배경으로는 한국남부발전 부산본부의 설비 노후화가 꼽힌다.
환경단체는 부산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60% 이상을 건물 부문(35.2%·2020년 기준)과 수송 부문(25.3%)이 차지하는 만큼 이에 대한 실질적 감축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기후위기부산비상행동 민은주 공동집행위원장은 “부산시의 조직 체계나 예산을 보면 탄소 중립 달성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노후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에너지 효율을 높여 온실가스 감축을 줄이는 리모델링) 정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건축 관련 부서는 탄소 중립에 별 관심이 없다. 수송 부문 감축을 위해 활성화 돼야 할 대중교통 분야는 자가용 중심의 도로 확충 기조에 밀려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적 특성 탓에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23.9%로 낮은 편이지만,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비롯한 환경 규제 대응이 미비하다는 점도 문제다. CBAM은 EU로 제품을 수출할 때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일종의 ‘탄소세’다. 민 공동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지역 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예상되는데도 관련 현황을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연구할 인력도 예산도 없다”고 꼬집었다.
■지역 특화 기후위기 대응을
바다를 낀 연안 도시의 특성에 맞게 해수면 상승, 빈번해지는 태풍과 폭우에 대비한 체계적 도시계획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정주철 교수는 “침수 위험 등 재난이 예상되는 연안 지역은 면밀히 조사해 개발을 규제해야 한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부동산 가격 등의 문제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에선 부유층이 연안 개발을 한 뒤 보상을 요구하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확충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부산가톨릭대 환경공학과 김좌관 석좌교수는 “공공기관과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태양광 설비를 늘려야 한다”며 “주민과 어민의 반대로 멈춰있는 고정식 해상풍력 대신 울산시가 추진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시민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특히 사회적 취약 계층의 복지가 위협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준이 교수는 “우리가 2050년 탄소 중립에 이른 뒤 네거티브 배출로 가면 2100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정도로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배출 경로로 가면 약 3.2도 상승에 이르게 된다”며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