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기후변화와 도시계획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기후위기
도시개발 분야도 필수적인 고려 요소
친환경 건물 확산·교통량 감축 절실
거짓말처럼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살았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년째 반복되는 패턴이지만 올해는 유독 심했다. 지독히 더웠던 여름의 절정기, “과연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라고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생각하지 않았을까. 최근 떠들썩한 해병대원 채 상병 사망 사건도 예상을 벗어난 폭우가 낳은 비극이다. 사실 우리나라 어느 다른 지역에 발생했더라도 비슷한 피해가 났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고려해 국토 개발을 재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변화되는 기후를 고려해서 기존 개발 지역에 대한 안전 강도를 높이거나, 위험하다고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추가 개발을 제한하는 등 국가적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가 올여름 불볕더위와 수해를 겪을 때,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던 건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이 이런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상 낙원’이라 불리던 하와이 마우이섬을 잿더미로 만든 대규모 산불, 84년 만에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LA)에 불어 닥친 여름 폭풍과 폭우, 일 년 강우량이 불과 반나절 만에 내린 그리스 등 남부 유럽, 60만 명의 대규모 이재민을 발생시킨 중국 북경 일대를 강타한 140년 만의 최대 폭우 등 올여름의 기후 재난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극단적 기후 현상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미국 동북부는 매년 역대급의 물난리를 겪고 있고, 남부 지역은 40도를 넘어 50도에 이르는 극단적 폭염이 일상화하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경제활동마저 급격히 위축시켜 막대한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했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날씨가 점차 일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러한 뉴노멀 시대에 “현대 문명이 계속 번영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심이 늘고 있다.
기후학자들이 말하는 중요한 수치가 있다. ‘1.5’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탄소 배출 활동으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 수치다. 이미 1.1도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공식 보고 사항인데, 전 세계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및 국제협약을 통해 각국의 자발적인 탄소 배출 감축을 독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2050년에 탄소 배출 제로(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고 2030년에 1.5도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심지어 “올해 이미 1.15도에 이르렀다”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와 같은 탄소 배출이 지속되면 2100년에는 3.2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내용처럼 새 행성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부산을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시 관계자들은 내년쯤엔 코펜하겐이 넷제로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펜하겐은 20년 전부터 저탄소 친환경 도시계획을 통해 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여 왔다고 한다. 도시 곳곳의 녹지자원을 보존하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자동차 통행량을 줄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 중심의 걷고 싶은 압축적 혼합 용도의 도시 형태가 구현되었다.
최근에는 이에 덧붙여 전기 차량의 대규모 공급과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도입해 에너지 자급자족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코펜하겐 또한 세계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코펜하겐도 매년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홍수지도를 중심으로 개발 계획을 규제·관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인구와 산업활동이 급격히 줄고 있는 부산은 이와 반대로 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고 있다.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첫째는 낡은 건물의 에너지 과다 사용이고, 둘째는 외곽 확산 개발로 인한 자동차 통행량 증가다.
부산시도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 건축물의 확산과 자동차 통행량의 획기적 축소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압축적 도시공간이 구현돼야 한다. 지금도 활발한 재개발과 재건축을 친환경 건축물로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압축도시 구현을 위한 15분 도시 만들기도 구호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또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자족성이 미래 도시에 가장 중요한 지속가능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미래 기후 현실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대응에 우리의 생존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