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람을 웃고 울리는 데 다이아몬드를 따라올 보석이 없다. 그 자체로는 순수 탄소 덩어리일 뿐인데도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영혼을 홀린다. 귀해서 비싸고 그래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탓에 부와 명예, 권력을 대변한다. 남녀 간에는 변치 않는 사랑의 증표이면서도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처럼 배신의 아이콘 역할도 한다.
‘블러드(blood·피) 다이아몬드’라는 말도 있다. 지금 유통되는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구촌 어느 곳의 힘없는 누군가가 피눈물로 캐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수년 전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충격을 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참상이 그 예다. 10여 년째 내전 중인 이곳에선 수많은 노동자들이 다이아몬드 채굴 현장에 내몰려 혹독한 고통을 겪는다. 또 그렇게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살육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비용으로 쓰인다. 다이아몬드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을 불러오는 사악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보석의 황제’라는 다이아몬드의 위상 때문인데,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구에 엄청난 규모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게 그 하나다. MIT 등이 참여한 연구진에 따르면, 매장량이 무려 1000조 톤이다. 흔해빠진 광물은 더 이상 보석이 아니다.
거기에 치명적인 결정타까지 나왔다. 바로 랩그로운(lab grown) 다이아몬드다. 연구실(lab)에서 자란(grown) 다이아몬드! 고온·고압의 특수한 환경을 통해 다이아몬드 씨앗을 만든 뒤 이를 키워 나가는 원리다. 기존 모조 다이아몬드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전문 감정사들이 현미경으로 봐도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적·화학적·광학적 특성이 똑같다. 무엇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1캐럿 크기가 되려면 수억 년이 걸리지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2~3주면 충분하다. 당연히 가격도 엄청 싸서, 천연 다이아몬드의 10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유통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고, 관련 상품은 출시되자마자 순식간에 동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다이아몬드의 종말”이라고 칭하는 이도 있다. ‘보석의 황제’가 아니라 그냥 ‘예쁜 돌’이 됐다는 게다. 여하튼, 다이아몬드로 인해 배신의 아픔을 곱씹거나 극한의 노동에 내몰려 피눈물 흘리는 일이 없어진다면, 그 또한 괜찮은 종말이지 싶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