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항과 이순신대로
이근열/한국지명학회 부회장
‘북항’이란 지명은 북쪽에 있는 항구라는 뜻이다.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북쪽 해안가라는 뜻으로 ‘북빈(北濱)’이라 부르던 곳이다. 여기서 북쪽의 기준은 일제 통감부의 이사청이다. 부산이사청은 초량왜관 관수왜가가 있던 자리로 지금의 동광동 2가 11번지 일대이다. 일제가 북빈을 메워 항구를 만들고 공식적으로는 ‘부산항’이라 하였지만, 남포동 일대의 남빈 매축으로 남항이 만들어지자 이곳을 북항으로 불렀다. 사료에는 북항이라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1935년 <부산일보> 기사에 ‘부산 북항 방파제 공사, 순조롭게 진행하다’라는 내용으로 북항이 등장한다. 부산항은 일제강점기에 북항이라는 이름으로 통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지도에는 공식적으로 부산항만 나타나고 북항이라는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1986년에 만든 ‘부산항(북항)계획 평면도’에 다시 남항과 북항(북내항, 북외항)으로 재등장한다. 지도만 근거로 하면 북항이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6년이 된다. 이를 근거로 북항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명도 하나의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북쪽이 아닌데도 북항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과, 지명을 통해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새로운 부산항의 신 매립지는 부산 발전을 위한 미래적 의미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기에 우리 것이 아닌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신 매립지의 이름으로 북항 대신 ‘엑스포항’이나 ‘초량항’ 등 대안이 되는 이름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나아가 이곳을 통과하는 도로를 ‘이순신대로’로 지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곳이 충무공의 부산대첩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따라 이순신대로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 같다. 문제는 ‘이순신’이란 이름을 함부로 도로에 붙인다는 그 과감성과 무지함에 있다. 이순신대로 명명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말하기 이전에 부산 도로명 중 ‘충장로’가 있는 이유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충장’은 임란 때 부산진첨절제사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정발 장군의 시호다. 이름을 두고 시호를 내리는 것은 나라가 정한 예의다. 돌아가신 후에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시호로 부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 함자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과, 우리말에 그, 그녀와 같은 3인칭 대명사가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 ‘정발로’로 명명하지 않고 ‘충장로’로 명명한 것이다.
물론 지명에 선인의 호를 붙이는 것도 우리의 지명 명명의 전통이 아니다. 지명과 같은 장소 이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 이름으로 명명하지 않는다. 나아가 발로 밟고 있는 곳을 누군가의 이름이나 호로 이름하는 것은 우리 문화로는 타당하지 않다. 지금의 대구(大邱) 지명이, 애초 대구(大丘)에서 바뀐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땅이름 ‘구(丘)’가 공자 이름이라 함부로 지명에 쓸 수 없다는 유생들의 탄원으로 바뀐 것이다.
이름을 건물이나 도로에 부여하는 전통은 서양 속성이다. 발견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땅을 차지했다며, 기존 지명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름을 땅 이름에 새겨서 소유를 명료하게 하려는 문화 전통은 우리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선조의 이름으로 된 땅을 밟고 다니며, 선조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소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고유 지명에는 이름이나 호로 명명된 지명은 역사적으로 없다. 이순신대로는 지명의 전통문화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조의 이름을 값싸게 이용하는 천박한 지명이다. 창원, 여수, 광양, 아산 등 여러 곳에 있는 이순신대로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걸 부산이 뒤늦게 따라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최소한 선조의 이름이라도 피해서 ‘충무대로’로 바꾸든지 아니면 새롭게 작명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시간과 의미를 기억하고 있는 지명은 절대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