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문화도시 부산의 꿈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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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문화 불모지 부산은 옛말
엑스포 통해 새 전기 마련
부산문화의 자긍심 살려 나가야

2030 새 역사의 계기 마련
지역 예술문화인들의 공로
부산 문화의 튼튼한 밑거름 기대

‘문화’ ‘미학’이라는 말만큼 낯선 단어도 좀체 만나기 어려운 듯하다. 뭔가 그럴 듯하지만 문화나 미학이라는 단언의 쓰임새는 매우 폭력적이다. 이런저런 문화가 있지만 ‘화장실 문화’까지 진도가 나가고, ‘절망의 미학’ ‘폭력의 미학’이라는 말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문화나 미학이 그렇게 고급한 게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로 오랫동안 통했다. 다음 달 개막하는 국제영화제로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거듭나면서 문화불모지라는 항간의 불온한 소문을 일축했지만 ‘문명은 있지만 문화는 없다’는 말이 회자한 것도 사실이다. 박래품의 도시이지만 대구·경북사람들은 부산을 ‘하도’(下道)라고 평가절하하기 일쑤였는데 여기에는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책임 또한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1983년 뿌리깊은나무에서 발간한 〈한국의 발견-부산〉 편에는 조갑제의 ‘부산의 주민 성품과 민족과 종교-해양성 기질, 해양성 문화’라는 글이 있다. 부산의 문화인 중에는 이 고장의 민중과 동떨어진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저 중앙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일부로서 예술 활동을 해 온 그들은 서울에 진출할 것을 꿈꾸며 부산을 즐겨 낮춰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만 작가 김정한과 이주홍을 비롯한 몇몇 문학 예술가들이 민중을 찾아 이야기함으로써 그 뿌리를 다져 평판을 얻었다”고 말했다.

‘문화불모지 부산’이라는 말은 사실 지독한 중앙 혹은 서울 콤플렉스였던 셈이다. 부산에 관한 자긍심이 없다 보니 부산의 문화를 얕잡아 본 것이다. 부산 발전의 모멘텀으로 기대를 모으는 엑스포 유치에 적극 뛰어들면서 최근 들어 ‘부산 이니셔티브’에 문화도 당당히 자리 잡아야 한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 2030 엑스포 유치를 결정할 11월 28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엑스포의 핵심 단어는 문화라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2030세계박람회는 부산의 문화적 경쟁력과 가치를 키우는 기회로, 문화의 수요와 공급을 같이 끌어올려 지역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엑스포를 통한 부산의 문예 진흥을 생각한다면 지역이 낳은 이주홍 김정한 유치환(문학), 한형석(음악·연극), 임응식 김종식(미술), 문장원(연희), 현인 금수현 이상근(음악) 등 부산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오늘에 소환할 필요가 있다. 부산 문화의 한 경지를 이룬 대표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문화불모지 부산이라는 오래된 오해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 입어 2030 엑스포 유치 전망이 한층 밝아지면서 부산 문화에 관한 자부심이 새록새록 돋아난 것은 망외의 소득이다. 부산이 경관이 아름다운 세계적인 워터프론트(친수공간)에다 K컬처를 장착한 고품격 도시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착공한 북항 1단계 재개발 사업이 올해 준공되면서 시민들에게 수변공원을 선사했고, 오페라하우스 등도 속속 들어설 예정이다.

이제 부산은 문화의 자부심이 필요하다. ‘부산 이니셔티브’로 세계에 부산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부산시의 협업도 돈독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계를 무대로 부산 엑스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고 박형준 부산시장도 엑스포에 시정을 올인하고 있다. 그만큼 부산은 재도약의 모멘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산 문화는 화통의 미로 정리할 수 있다. 부산의 해양성이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 등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고 봤을 때 바다로 통하는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의 그 감성적 기질의 파토스는 화통으로 집약된다. ‘화끈하다’ ‘박력 있다’ ‘진취적이다’ ‘개방적이다’ ‘직선적이다’ ‘선이 굵다’ ‘ 구질구질하지 않다’ ‘흑백이 분명하다’ 등 다양한 감성적 기질로 드러난다.

화통의 부산미는 부산의 미적 특징인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 ‘단발성’으로 이어진다. 혼종성은 부산의 오랜 잡것들의 문화에서 비롯하여 한솥밥 정신을 길렀고, 역동성은 우리가 남이가를 거쳐 다이내믹 부산으로 분출했다. 저항성은 야도의 뿌리가 되었고 단발성은 마침내 소멸하고 마는 슬픈 정조의 바탕이 되었다. 화하고 통하는 부산의 미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곧 열린다.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4개 극장 25개 스크린에서 69개국 209편의 초청작이 들어와 부산은 또 한 번 영화의 바다가 된다. 내홍 사태를 겪은 부산영화제의 재도약이 기대된다. 특히 부산 출신의 올해의 게스트 송강호 배우에 대한 기대가 크다.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의 부산행도 기대를 모은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하여 부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산 사람이다. 문화도시 부산의 꿈이 그렇게 무르익고 있다.

임성원 논설실장 forest@busan.com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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