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바다를 그릵다
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그리다·읽는다 더한 ‘그릵다’
어반스케치 본연 목적에 부합
부산 바다 풍경 그린 작품 전시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
사랑하는 마음 더 키우는 기회
지난 8월 나와 동료 몇 명이 부산시청 전시실에서 ‘바다를 그릵다’라는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전시 포스터에는 ‘건축가와 함께 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건축가인 나와 최윤식 선생이 속한 ‘도시그림’ 어반스케치 팀이 주축이 되어 연 전시였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여는 초대장에 이렇게 적었다. ‘2023년 제11회 부산해양레저축제의 하나로 부산의 어반스케쳐들이 바다로 나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푸른 바다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브릿지, 물살을 가르는 요트와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 부산의 여름 풍경은 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작은 그림 몇 점을 모아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 맑고 푸른 바다 그림을 보면서 여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사)한국해양레저네트워크에서 주관한 제11회 대한민국 해양레저 축제(KIMA 2023)가 부산 소재의 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렸다. 해양레저의 저변을 확산하고, 해양 강국 코리아의 비전을 실현코자 기획했다고 한다. 우리 전시회는 그 행사의 하나였다.
제목으로 붙인 말 중에 ‘그릵다’란 말이 생소할 지 모르겠다. 우리말 ‘그리다’와 ‘읽는다’가 합쳐진 일종의 조어(造語)로, ‘어떤 대상의 의미를 읽고 나서 그것을 그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내 생활 주변의 것들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것들을 그려본다는 어반스케치 본연의 목적과 잘 부합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우리 팀은 이번의 일로 바다를 다시 한번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나는 바다에 요트가 떠 있는 풍경 몇 점을 그려서 액자에 넣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까운 바다의 색이 짙습니까? 먼 곳이 짙습니까?” 어떤 분이 내게 물었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유심히 관찰해 보십시오. 어떨 땐 수평선 가까이가 짙고 어떤 날은 내 발 앞의 물이 짙습니다.”
이어 우리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게 되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늘과 바다의 만남만큼 운명적인 것이 있을까? 둘이 만나지 않으면 풍경은 완성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 그림 모두가 거기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물과 요트에 집중한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물의 색으로 채운다. 내 그림 속 바다의 색은 푸른색에 약간의 녹색이 섞인 색으로 그려져 있었고, 나는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저건 분명히 무엇이 비추어진 모습이 아니라 깊은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본연의 색임이 분명하다. 해초의 색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면 플랑크톤과 같은 미세한 것들이 뿜어내는 색일까?
물의 색은 무엇이 만드는가? 그것은 직접적인가 아니면 빛과 조합하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자연의 결과물인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나는 바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고, 먼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가끔 하늘과의 경계에 시선이 머물기도 한다.
한 달여의 작업 후에 전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 설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의 하얀 벽에 우리가 그린 그림이 하나, 둘씩 걸리자, 벽은 온통 파란 바다색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바다뿐만 아니라 요트와 브릿지와 집,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진 이 도시의 그림들이다.
시청에 오신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림을 본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다. 아마 그들이 바다의 도시에서 이루어 온 지난한 혹은 뭉클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지 싶다. 그들의 틈에 슬쩍 섞이어 엿듣기라도 할까 보다.
일주일 간의 전시회가 무사히 끝났다. 양손에 액자를 들고 전시장을 나오는 길은 늘 아쉬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전시회로 나는 바다와 그것에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