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조 펑크 난 국세수입… 지자체마다 ‘재정 경보음’
법인세 등 역대 최대 규모 결손
정부 추경 없이 가용자원 대응
지방 이전 재원 23조 삭감 예상
올해 역대급 세수 부족을 메울 주요 재원은 환율 방어 과정에서 생긴 외국환평형기금 여윳돈이다. 이 여유 자금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린 돈을 미리 갚고 이 과정에서 추가로 확보한 공자기금을 활용해 세수 부족분을 메운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외평기금 조기 상환에도 환율 방어 재원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탓에 외평기금의 규모를 줄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세수 부족은 대규모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자동 삭감'으로 이어져 지방 재정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해야 할 세수 펑크는 전체 부족분의 38%인 23조 원에 달한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수 부족분 59조 1000억 원 가운데 중앙정부가 메워야 할 세수는 지방교부세·교부금을 제외한 약 36조 원이다. 정부는 이 중 24조 원을 공자기금 여유 재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예산 자연불용, 세계잉여금 등을 활용할 방침이다. 정부가 밝힌 공자기금 여유 재원 24조 원 중 약 20조 원은 외평기금이 빌려 간 자금을 조기 상환하기로 하면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계속된 강달러 기조에서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꾸준히 팔아 치웠고 이 과정에서 외평기금에 상당한 규모의 원화가 쌓이게 됐는데 이를 공자기금에 빨리 갚겠다는 것이다. 다만 조기 상환은 구조적인 적자에 시달려 온 기금의 수지 개선을 위한 것이며 세수 부족 상황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외평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하면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자기금은 여유가 있는 기금으로부터 재원을 빌리거나 국채를 발행해 재원이 부족한 기금에 빌려주는 일종의 자금 조달 창구다. 2008년 86조 원 수준이었던 외평기금은 외환보유고가 늘면서 지난해 269조 4000억 원까지 몸집이 불어났다. 장기간 약달러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입한 결과다.
달러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공자기금으로부터 빌려왔고 매년 공자기금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도 크게 늘었다. 결국 이자 비용은 기금 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해 외평기금 기금 수지는 환평가 손익을 제외하면 9천억원 적자다. 외평기금이 여유 재원이 생길 때마다 공자기금에서 빌린 자금 규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기금 여유 재원은 2014∼2016년에도 조기 상환된 적이 있고 2020~2022년에는 공자기금 차입을 당초 계획 대비 9조 원가량 줄이기도 했다.
이번 외평기금의 조기 상환 계획도 이런 '기금 수지 개선'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예상 밖의 공자기금 여유분이 생겨났고 때마침 정부는 역대급 세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 적시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 기금의 대규모 조기 상환 시기가 역대급 세수 펑크와 겹치면서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외환 방파제'를 허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이런 우려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더딘 경기 회복 등에서 촉발된 실물·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관측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내년 강달러 기조가 반전하면 외평기금의 운용도 지금과 달리 빠듯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미국 기준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약달러 기조가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외평기금의 대규모 원화 조기 상환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가시지 않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정부는 외평기금 조기 상환에도 충분한 대응 여력이 있는 데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내년 18조원 규모의 단기 원화 외평채 발행 한도까지 확보한 만큼 외환시장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신중범 국제금융국장은 "외평기금 조기 상환은 수지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세수 추계와 별개로 추진한 것"이라며 "원화 외평채를 통해 추가로 재원을 투입할 수 있는 만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여력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세수 부족은 지방 재정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세수가 줄면 내국세에 기계적으로 연동되는 지방교부세·교부금도 자동 삭감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내국세 수입이 예산 대비 55조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삭감되는 지방 이전 재원은 지방교부세 11조 6000억 원을 포함해 총 23조 원 규모다.
지자체는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지자체 세계잉여금 등 지방 예비 재원을 활용해 계획된 사업을 차질 없이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올해 지방세수가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각 지자체는 상당한 수준의 긴축 재정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취득세가 큰 폭으로 줄면서 지방 재정이 위축된 것으로 분석됐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17개 시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각 시도가 거둔 지방세 수입은 52조 4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5조 8000억 원) 줄었다. 17개 시·도 중 상반기 세수 실적이 작년보다 나아진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교부세·교부금의 대규모 삭감은 지방 재정난을 심화할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당초 계획한 지역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는 특별교부세,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자율계정 추가 한도 부여 등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안전·복지 등 필수적인 지역 사업의 차질 없는 집행을 독려하고 나섰다. 행정안전부 한순기 지방재정국장은 "불용되거나 이월된 예산을 미리 조정해서 서민 생활과 지역 경제가 위축되지 않는 방향으로 협조하고 지원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황상욱 기자 eye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