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도시 건축과 공간을 담다, 역사와 문화를 읽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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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뷔스트 개인전 ‘도시산책자’
고은사진미술관·독일 ifa 협력 전시
독일 통일 전후 동독 지역 등 촬영
‘도시풍경’ ‘평지’ ‘비크만의 유산’ 등
9개 시리즈와 2개 레포렐로 소개
과거를 통해 현재 불러내는 사진들

ⓒ울리히 뷔스트(ifa) ‘거리의 아침. 마크데부르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거리의 아침. 마크데부르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도시를 거닐며 역사와 문화를 읽어냈다.

독일 사진가 울리히 뷔스트의 개인전이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고은사진미술관은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독일국제교류처(ifa)와 함께 ‘도시산책자:울리히 뷔스트의 사진’(이하 도시산책자)을 오는 11월 5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2014년, 2017년, 2021년에 이어 고은사진미술관이 독일 사진을 네 번째로 소개하는 자리이다.

1949년생인 울리히 뷔스트는 건축을 전공했다. 1972년 동베를린으로 이주한 뷔스트는 1977년까지 도시계획가로 활동했고, 사진 전문 잡지에서 사진 에디터로 일했다. 뷔스트는 통일 전 동독에서, 통일 이후에도 독일의 동쪽 지역에 살면서 작업을 했다. 이런 환경의 영향으로 뷔스트의 사진에서는 도시가 가진 건축학적, 공간적 분위기를 잘 드러난다. 또 정치·사회적 급변기를 거치며 동독이 겪은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울리히 뷔스트(ifa) ‘베를린 미테 지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베를린 미테 지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도시산책자’전은 총 124점의 사진으로 구성된 9개의 시리즈와 두 개의 레포렐로(접이식 앨범)를 소개한다. ‘도시풍경’ 시리즈는 1970~80년대에 찍은 사진들로 뷔스트가 사진작가로 이름을 얻는 계기가 됐다. 도시 풍경이지만 사람들은 최대한 배제되어 있는 사진에서 공간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마티아스 플뤼게는 뷔스트가 ‘엄격한 구도에 그래픽적 단순명쾌함을 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합쳐지고 난 뒤 도시의 변화 과정을 찍은 ‘베를린 미테 지구’ 시리즈는 더 정제된 도시 모습을 보여준다. ‘미테’는 독일어로 중앙을 의미한다. 1995년에서 1997년까지 베를린 중앙 지역은 장벽으로 인해 생겨난 빈 공간이 많았고, 그곳에는 새 건축물이 들어섰다. 뷔스트는 도시를 찍을 때 구름이 없는 순간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플뤼게 큐레이터는 “구름이 없고 햇빛이 나다 보니 (뷔스트의 사진에) 자연히 그림자가 많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도시의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울리히 뷔스트(ifa) ‘외곽타운. 북서 우커마르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외곽타운. 북서 우커마르크’.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의 ‘프렌츨라우’ 연작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울리히 뷔스트의 ‘프렌츨라우’ 연작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뷔스트는 도시만 찍은 것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 작업인 ‘외곽타운. 북서 우커마르크’ 시리즈에서는 독일 북쪽에 위치한 작은 농촌 마을을 담아냈다. 농촌 모습을 담은 사진이지만 뷔스트 특유의 건축적 시선이 느껴진다. 브란덴부르크주 ‘프렌츨라우’를 찍은 시리즈는 컬러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사진을 볼 때 너무나 진지하다. 내가 적나라한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지 않으면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어렵다. 내 작품에는 다분히 유머와 그로테스크, 풍자가 약간은 숨겨진 채 섞여 있다’는 뷔스트의 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다.

울리히 뷔스트 개인전에 전시된 ‘평지. 쇤호프’ 시리즈. 오금아 기자 울리히 뷔스트 개인전에 전시된 ‘평지. 쇤호프’ 시리즈. 오금아 기자

‘평지. 쇤호프’ 시리즈는 뷔스트가 이사한 시골집의 다락방에서 옛날 신문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구겨지고 얼룩진 신문지를 찍어서 프린트한 것으로, 신문이 나올 당시 동독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뷔스트가 미놀타 미녹스 카메라로 찍은 ‘노트’ 시리즈와 사적 감성을 드러낸 ‘연감’ 시리즈 등도 전시되어 있다. ‘비크만의 유산. 뵐로우스지게’는 다른 작품과 결이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뷔스트가 오스트제에 살던 시절 예전 집주인의 남겨진 물건을 찍은 사진이다. 독특한 모양의 스탠드, 낡은 보온병, 분쇄기처럼 보이는 부엌용품 등 사물을 근접 촬영한 사진에서도 건축적 미감이 느껴진다.

ⓒ울리히 뷔스트(ifa) ‘권력의 웅장함’.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권력의 웅장함’.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비크만의 유산. 뷜로우스지게’.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ifa) ‘비크만의 유산. 뷜로우스지게’.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 제목 ‘도시산책자’는 역사 속을 산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도시와 건축 사진을 통해 뷔스트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건축이 실제로는 어떠한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작가로서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도시풍경’에 대해 뷔스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궁극적으로 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도시가 무엇이고, 이러한 도시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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