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중국 소황제족과 한국판 소황제족
이대성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최근 지인과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생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 반의 학생 수가 60명이 넘었고, 과밀 학급 문제로 오전반과 오후반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기자도 한 반에 학생이 50명이 넘었던 ‘콩나물 교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통계청이 지난달 말 발표한 올해 2분기 국내 합계 출산율은 0.70명. 올해 합계 출산율은 0.60명대가 예상된다고 한다. 출산율 수치로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통계청의 연도별 출생자 수를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1971년 한 해 태어난 출생자 수는 100만 명이 넘었고, 합계 출산율은 4.54나 됐다. 그랬던 출생자 수는 지난해 24만여 명까지 추락했다.
14억 명의 인구 대국 중국은 급격한 인구 증가에 1980년대부터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부모는 하나만 낳은 아이를 애지중지 과보호 속에 키웠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버릇없고 제멋대로라고 해서 소황제족(小皇帝族·작은 황제)이라 불렸다. 자기 자식만 중요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자, 중국 사회에서는 소황제족에 대한 풍자가 가득했고, 이들에게 중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의미로 소황제족을 카오스(chaos)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은 2016년 산아 제한 정책을 폐지했지만, 결혼 기피 풍조 등으로 다시 저출생 문제에 당면했다. 소황제족은 지금까지도 중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우리의 저출생 문제를 화두로 중국의 소황제족까지 끌어온 건, ‘한국판 소황제족’ 현상이 심각한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의 교권 추락과 공교육 붕괴 사태에서 우리나라의 어두운 미래가 엿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툼의 이유가 어떻게 됐든, 폭력을 행사한 아이의 부모가 상대 아이의 부모에게 먼저 사과를 하기는커녕 “우리 아이의 심정은 어떤지 먼저 들어주셨냐”며 교사를 다그치고, 어떤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다” “우리 아이는 칭찬만 해달라”며 극진한 대접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판 소황제족’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건 2000년대 중반이다. 중국의 소황제족처럼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며 애지중지 키우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이다. 한 중견 교사는 교권 추락과 공교육 붕괴는 이미 10년 전, 길게는 15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돼 왔다고 말한다. 한국판 소황제족의 등장이 교권 추락과 공교육 붕괴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길러 내는 일에는 가정과 학교, 마을(사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가정에서는 “내 아이만 최고” “내 아이는 즐거운 경험만”이라는 양육 문화가 팽배하다. 지금도 많은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맡아야 할 교육은 방기한 채, 한국판 소황제족을 길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내 아이의 실패와 속상했던 경험은 지적·정서적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내 아이가 ‘○학년 ○반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는 것 또한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나는 자양분이다. 심각한 저출생 상황 속에 부모와 가정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