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동반자와 들러리
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부산 기업인 역대급 엑스포 지원금 불구
시장 파리 출장 동행했다 리셉션 문전박대
에어부산 홍보용 래핑 때도 MOU만 신경 써
기업을 들러리로 세우는 낡은 행정 버려야
“나의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간다.”
마이클 조던에 비견되는 현역 최고의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13년 전 고향 클리블랜드를 떠나 마이애미로 이적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 디시전(The Decision)’ 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놨죠. 스포츠 스타가 고액의 연봉을 좇아 팀을 옮기는 일은 흔합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한술 더 떠서 ‘내 인기와 재능을 어느 도시에 줄까 궁금하지?’라며 이를 미국 전역에 공개방송한 겁니다.
선수가 구단을 ‘간택’하는 이 발칙한 쇼가 달라진 스포츠 비즈니스의 현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무게 중심이 구단이 아니라 선수에게 넘어갔다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라는 겁니다.
난데없이 농구 이야기를 꺼낸 건 과연 부산시는 비즈니스 트렌드에 맞는 자세를 갖추고 있느냐고 되묻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업 비즈니스도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한국의 사람과 재화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남은 도시끼리 무한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기업을 모셔 와서 지갑을 열게 하려면 지자체가 스킨십에 공을 들이고 그만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부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부산 기업인들은 지난 2년간 부산시에 200억 원이 넘는 돈을 2030월드엑스포 유치 지원금으로 전달했습니다. APEC 정상회담 때도, 아시안게임 때도 이만큼 지갑을 연 적은 없었지요.
코로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불황에도 부산 기업들이 뭉칫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요? 흔히 말하는 경제적 부가 효과 때문일까요? 모르긴 해도 부산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동안 부산시는 척지고 살 수 없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엑스포 유치전 와중에 부산 기업인 사이에는 이런저런 불만이 쏟아집니다. ‘기업이 부산시를 생각하는 만큼 부산시도 기업을 시정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느냐’라는 불멘 소리가 그것입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엑스포 4차 PT에서는 한 차례 해프닝이 있었답니다. PT 본행사 이후 대한민국 리셉션이 열렸습니다. 정부가 해외 인사를 대거 초대해 엑스포 유치를 호소하라고 깔아준 판입니다. 부산 경제사절단 중 국내외 수백 명의 인사가 운집한 이 리셉션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상의회장 단 1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출입이 거절됐습니다.
사절단을 꾸려 파리로 함께 떠나자고 제의한 건 부산시였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사절단이 전달받은 건 참석해야 할 행사의 시간과 장소가 전부였습니다. 이쯤 되면 시장이 파리 출장 가는데 자비로 비행기 타고 따라와서 들러리 서달라고 부탁한 꼴입니다.
무심한 건지, 무례한 건지 모를 부산시의 이런 자세는 이미 지난 4월 국제박람회기구 실사 때도 문제가 됐지요. 지난해 부산시는 에어부산에 엑스포 유치 기원 문구를 항공기에 래핑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적자투성이 에어부산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여 7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사단의 의전용 항공기는 대한항공으로 결정나면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MOU 체결할 땐 동반자라며 호들갑 떨다가 정작 결정적인 시점에서는 거점 항공사를 들러리로 전락시킨 겁니다.
부산은 국제도시입니다. 월드엑스포 같은 메가 이벤트 유치도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그때마다 든든한 동반자는 필요합니다. 방정맞은 소리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당장 이번 엑스포 유치가 불발 돼서 재유치 운동을 벌이자고 한다면 들러리 취급받던 기업인들이 다시 기분좋게 지갑을 열까요?
부산시가 공을 들이는 역외 투자 유치도 기업인을 들러리로 세우는 이런 낡은 행태를 벗어나지 않고는 힘듭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데 필요한 건 진정성과 디테일입니다. 그 두 가지가 갖춰져야 기업인이 앞다퉈 ‘나의 투자를 부산으로 가져간다’고 팔을 걷을 겁니다.
부산시도 월드엑스포 유치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다들 바쁘고 힘든 줄로 압니다. 그러나 급하더라도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기업인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시정의 동반자를 잃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여유도 챙겼으면 합니다. 11월의 마지막 PT가 아름답고 훈훈하게 마무리되길 기도합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